21대 국회 지역 현안 법안 '줄폐기'…결국 빈손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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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현안 외면 속 22대 국회 마무리
민생 팽개치고 정쟁 몰입, 법안 통과율 역대 최악
산은법 개정·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고준위특별법 줄줄이 폐기
22대서 원점 재검토…험로 예고

28일 오후 국회에서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 등을 표결하는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국회에서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 등을 표결하는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9일을 끝으로 21대 국회가 막을 내린다. 여야의 정쟁으로 법안 통과율은 30%대 중반에 그치며 민생을 외면한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지역 관련 핵심 법안들도 예외는 아니다. KDB산업은행법 개정법안과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글로벌 특별법),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제정안(고준위 특별법) 등 국정 과제와 맞닿은 부산 현안 관련 법안도 줄줄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수년간의 지난했던 협상이 끝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22대 국회 역시 거대 야당이 주도권을 가져가면서 지역 법안 처리는 더욱 험로가 예상된다.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는 지난 4년간 2만 5851건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처리한 법안은 9463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과율은 36.6%로 국회 역사상 가장 낮은 법안 처리율을 기록한 20대 국회(37.9%)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처리되지 못한 총 1만 6388건의 법안은 21대 국회 폐원과 함께 자동 폐기된다. 폐기 법안들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 법안 제·개정안 발의부터 상임위 심사·의결까지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도 여야는 28일까지 쟁점 법안 처리를 두고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기만 했다. 이로인해 지역 핵심 법안들도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으면서 모조리 자동 폐기됐다. 부산 핵심 법안으로 꼽히던 산업은행법 개정안, 글로벌 특별법, 고준위 특별법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법안은 22대 국회에서 제·개정안 발의부터 상임위 심사·의결까지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거대 야당이 22대 개원 즉시 특검법 추진 등 입법 공세를 예고하면서 새 국회도 지역 핵심 법안 논의가 무기한 연기될 조짐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 국정과제다. ‘산은 본점을 서울시에 둔다’는 법 조항을 수정해 부산 이전 근거를 마련하는 산은법 개정안은 번번이 민주당의 반대에 막혀왔다. 22대는 더욱 가시밭길이다. 산은 이전 반대를 주도한 김민석(서울 영등포을) 의원이 4·10 총선에서 생환했고, 산은 이전 반대 1위 시위를 한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도 바로 옆 지역구인 영등포갑에서 당선돼 원내로 진입한다. 여기에 산은 이전 결사반대를 외치던 박홍배 전 금융노조위원장은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됐다. 결국 22대 국회도 거야 민주당의 결심에 산은법 개정이 달린 셈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글로벌 특별법 역시 원점 재검토 절차를 밟게 됐다. 이 법안의 경우 추상적인 특례 조항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라 21대 국회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글로벌 특별법은 부산을 싱가포르나 중국 상하이 같은 물류·금융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으로 지난 1월 국회에 발의됐다. 부산을 남부권 혁신 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규제를 혁신하고 특례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다만 앞서 민주당 지도부가 글로벌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대를 보여온 데다, 균형발전 명분도 충분한 만큼 법안 수정 이후 여야 협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고준위 특별법 또한 폐기된다. 이는 윤 정부 친원전 정책과 맞닿아 있기도 하지만, 국민 안전 정책과 더욱 밀접하다. 고준위 특별법은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사용된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을 건설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시설은 2030년 한빛(전남)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경북·2031년), 고리(부산·2032년) 원전 등이 차례로 가득 찬다. 저장시설 건설이 미뤄지면 사용후 핵연료를 둘 곳이 없어 원전을 멈춰야 할 수 있다. 특히 원전 내 사용후 핵연료 포화는 인근 지역에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같은 상황에 고준위 특별법은 여야 대치 상황 속에서도 막판 협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법안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채 상병 특검법 공방으로 여야 채널이 일제히 중단되면서 관련 논의도 중단됐다. 이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된 바 있다. 연이은 법안 폐기로 당장 2030년부터 원전 핵폐기물 포화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여야 극한 대치 속 지역 핵심 법안들이 잇따라 폐기되면서 22대엔 새로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부산의 경우 민주당 의석이 3석에서 1석으로 줄어 민주당 중앙당 소통 채널이 좁아진 것도 악재로 다가온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22대 국회에서 여당은 범야권 192석을 상대해야 해 산은법 개정 등 현안 해결이 더욱 쉽지 않게 됐다”며 “공공기관 2차 이전, 원전 안전 대책 마련 등 명분 제시로 야당 설득을 유도하는 식으로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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