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상 밖 밀착 없어”… 중국, 정상회의 재개 의미 부여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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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한일중 정상회의 미중 반응

미 언론, 중 ‘대한일 접근’ 경계
북한 문제 의견 불일치 부각도
중 관영 매체 “결과 풍성” 호평
특히 비안보 영역 합의에 초점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리창(오른쪽)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리창(오른쪽)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대통령실 제공

4년 5개월만에 서울에서 재개된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반도체 등 핵심 기술 분야의 대중국 수출 통제에 고삐를 조이고, 전기 자동차와 배터리, 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 대폭 인상을 발표한 상황에서 열렸다. 이에 미국과 중국의 언론, 전문가들은 정상회의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미국은 핵심 동맹국인 한일을 향한 중국의 접근을 경계하는 반응이 역력한 반면 정상회의 참석국인 중국은 “풍성한 결과를 부정할 수 없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3국 밀착 없었다" 선긋기

공동선언문 등에서 예상을 깨는 한중일 3국의 '밀착'은 없었다는 것이 미국 주요 언론들의 대체적인 평가의 논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사에서 중국이 미국과,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한일) 간 교역 관계를 이간질하길 원했다며 리창 중국 총리가 3국 정상회의와 한·일과의 양자 회담때 한중일 3국간 조화로운 경제 관계의 장점을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중국의 보호주의 탈피 요구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는 무역 보호주의 탈피에 대한 이니셔티브에 합의하지 못했고, 대신 수출통제 분야에서 소통을 지속할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적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최근 대규모 '관세 폭탄'을 던진 상황에서 중국이 관세 장벽으로 대표되는 '무역 보호주의' 반대 전선에 한일을 끌어들이려 했을 것이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중국의 주된 관심사는 미중 무역경쟁 심화 속에서 한일이 추가적인 대중국 수출 제한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의 동맹들이 더 강한 대중국 무역 관계를 추구하도록 설득함에 있어 계속 제한에 직면할 것"이라고 썼다.

WSJ는 또 한중일 정상이 대만, 북한 문제와 관련해 뚜렷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사실에도 주목했다. 하지만 동시에 WSJ는 미국이 한일의 대중국 관계 개선을 전적으로 저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소개했다.

이 매체와 인터뷰한 브뤼셀 거버넌스스쿨의 통피 김 연구교수는 한일이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에 맞서 명시적으로 중국과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일방적 정책은 한일이 중국에 더 다가가도록 등떠밀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대한 동맹국(한일)의 의존은 경제영역에서 자율성을 제약할 것이나 미국은 동맹국들이 미국 요구에 맹목적으로 따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사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대해 "3자 대화는 중국과 미국간의 심화한 긴장으로 인해 빛을 잃었다"며 "대화는 공급망 보호, 고령화와 감염병 도전 대응 공조, 무역 촉진 등 주로 공통 분모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영역들에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3국 정상이 "대만, 북한 등 지역 안보 현안에 대해서는 고도로 신중했다"며 "북한이 정상회의 개시 몇시간 전에 예고하고, 정상회의 종료 후 실행한 정찰 위성 발사는 한중일의 차이를 부각하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은 자국 시장에 대한 접근 확대를 제공함으로써 일본과 한국의 환심을 사고,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본다"며 중국이 한중일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가속화 논의에 동의한 것이 그와 같은 목적에 따른 포석이었다고 짚었다.

■중국, 개최 자체에 "풍성한 결과"

중국 관영 매체와 전문가들은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심화 속에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 개최 자체가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영문 매체 차이나데일리는 28일 사설에서 "최근 이웃 3국 사이에 불화(discord)를 심으려는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5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중일한(한중일) 정상회의의 풍성한 결과를 부정할 수 없다"며 "세 이웃 국가는 미국의 분열 노력으로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썼다.

차이나데일리는 "리창 중국 총리가 이번 회의에서 3자 협력 심화를 위해 한 제안들은 모두 역내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 있다"며 "전제조건은 3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견지한 채 외부 간섭에 저항함으로써 각자의 핵심 이익과 주요 우려를 서로 존중하고, 3국 협력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3국 정상이 북핵 문제나 중국의 위협적 행동 등 동북아 안보 상황에 관해선 이렇다 할 합의를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지만, 중국 관영 매체들은 대체로 '이견'을 다루지 않았다.

특히 전날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 문제에 침묵한 리창 총리처럼 중국 매체들에서도 이와 관련한 언급은 찾기 힘들었다. 3국 이견 대신 대화 재개나 협력에 의미를 부여하는 입장은 전날 중국 외교부가 3국 정상회의에 대해 내린 평가와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

관영 영문 매체 글로벌타임스 역시 사설에서 "바깥에서는 의도적으로 기대감을 낮추려는 일부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번 회의의 결과와 영향은 매우 의미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면서 3국 협력 제도화를 위한 공동 노력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공급망 협력 심화 등 '비안보' 영역 합의에 초점을 맞췄다.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별도 논평으로 한중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한미·한미일 연대의 '틈'을 엿보기도 했다.

신문은 "미국은 '경제 안보'를 구실로 한국이 '칩 동맹'에 들어가도록 강요하고, 반도체 같은 첨단 영역의 중한 협력에 제한을 가하면서 공급망을 교란했다"며 "한국이 미국의 압력으로 중국 시장을 상실하면 미국·유럽 시장에서 완전히 보상받을 수 없는 거대한 공백이 발생할 것이고, 한국 경제를 어려움에 빠뜨릴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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