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부산다운 언어 경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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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간판, 표지판, 벽보 등 시각적 미디어
도시 이미지 형성에 주된 역할 해

지역 언어 경관 무질서·조잡함 도 넘어
단순 전달서 탈피 디자인적 전략 필요

시민이 나서서 거리 바꿔야 할 시점
구체적이고 세심한 ‘부산다움’ 전개를

간판 빌딩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건물이 많다. 주로 로터리를 접한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외벽이 온통 간판으로 뒤덮인 형국이다. 혹자는 외국인들이 이를 한국적 현상으로 재미있게 느낀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표정이라고 우쭐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 총선에서 현란하게 나부낀 현수막 가운데 소음에 가까운 것도 적지 않았다. 여전히 거리에서 홍보물이 가을날의 낙엽처럼 흩어지기도 한다. 결코 우리 사회의 역동적인 문화 표현이라 보긴 어렵다. 소비자나 지지자를 유인하려는 애끓는 노력이라고 하나 그리 효과가 있다고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 자기 현시와 욕구의 전시처럼 보일 경우도 적지 않다. 언어 경관의 무질서와 조잡함이 도를 넘은 게 아닌가 한다.

언어 경관은 간판을 위시해 표지판, 벽보, 현수막, 홍보 인쇄지 등과 같이 문자 언어를 매개로 한 시각적 미디어를 아우른다. 도시를 구성하는 미디어의 한 양상이지만 도시 이미지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한 요소이다. 흔히 우리는 가로나 철도, 해안과 강, 건축물과 공원 등을 주요한 이미지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연구는 언어 경관이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7할의 작용을 한다고 보고한다. 그만큼 각인의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다. 도시는 시각 문화의 가장 첨예한 현장이다. 시민이든 관광객이든 도시는 텍스트로 읽히게 된다. 이미지는 도시 경험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언어 경관이 단순한 전달 차원에 머물지 않고 특별한 디자인 전략이 필요한 사정이 여기에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볼 수 있는 한글로 된 스타벅스 간판이 인상적이다. 주위의 여러 경관과 조화롭다. 아예 흰 바탕의 간판은 백자를 연상하게도 한다. 일본 교토 기온의 스타벅스 간판은 갈색 로고를 사용해 건물과 어울리게 했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맥도날드 간판은 하얀색 바탕에 먹으로 표기해 경관을 해치지 않았다. 모두 미국에서 발신한 본디의 로고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제 자리에 적합하게 변용한 고심이 역력하다. 물론 크게 보면 동아시아 3국의 언어 경관 차이가 뚜렷하다. 중국은 붉은색을 많이 사용하고 규모가 크다. 가령 상하이나 홍콩 같은 대도시는 매우 현란하고 웅장하다. 일본도 중심지에서 사이버펑크를 연상할 정도로 화려함을 느낄 수 있으나 여기저기에서 소박하고 차분한 와비사비의 섬세함을 발견하게 한다. 모두 색채와 자체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채도가 높은 원색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고 한글 전용 운동을 따라 한글과 더불어 영어가 혼재하는 경향이 있다.

큰 틀에서 부산다움에 관한 논의가 많았다. 멀리 태평양과 접속하는 부산항, 연안의 다채로운 항구와 포구, 낙동강 유역의 자연과 산업 경관, 산복도로와 크고 작은 산과 하천, 원도심과 동래, 서부산과 동부산 등을 매개로 부산의 기억을 되새기고 도시의 미래를 상상했다. 마땅히 피란 수도나 경부 개발축의 근대화가 말하듯이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항하는 분권의 거점이고 인구가 줄고 있는 시대에 외부를 유인해 관계 인구를 형성하는 개방적인 네트워크 창의 도시로 적합하다. 또한 내륙의 구심력을 이겨내고 해양의 원심력을 키우는 원천으로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아시아 해협을 건너 대양을 경험하고 사유하며 상상하는 시작도 부산이다. 적어도 부산은 한국의 바른 미래를 견인하는 방법이자 사상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담론은 이제 어느 정도 자타가 공인하는 마당이다. 하지만 지식 정보 자본주의 시대에 일극으로 가속하는 인력을 끊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 내재한 활력을 외부로 발산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찾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도시 이미지를 생각하기를 제안한다. 부산다운 언어 경관을 조성하는 일이 긴요하다. 온통 일차원적인 의미 전달에 매달리는 생경한 간판과 안내판이 난무한다. 일본인과 중국인에게 알리려는 다중 언어도 지나치게 돌출돼 있다. 바다의 푸른빛이 언어 경관에 스며들고 있지 못하다. 부산다운 가로와 간판은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부산다움은 하나의 추상이 아니며 많은 세부를 가질 수 있다. 캘리그래피와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용한 방법도 긴요하다. 이러한 일을 위로부터 시행하자는 말이 아니다. 먼저 찾아보고 발견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행정 단위가 아니라 골목 단위로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자기주장이 강한 획일과 사각형의 무덤덤한 형태를 반복하는 거리의 이미지를 바꾸는 일은 결국 시민이다. 구체적이고 세심한 부산다움을 위한 디자인 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시점이다. 도시의 이미지는 거대 건축이나 스펙터클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소통의 언어에서 차곡차곡 그 이미지가 쌓여 형성된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부산다운 언어 경관을 찾고 구성해야 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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