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미더운 어시장 선별기… “제값 못 받을까 걱정”
올 1월 고등어 자동 선별기 설치
국·시비 4억 포함해 약 18억 원
선사들 불신에 수개월 개점휴업
"인식 개선 통해 이용률 높일 것”
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이 고등어를 크기별로 분류해 주는 ‘선별기’를 설치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어업인에게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 올해 현대화 사업으로 일부 위판장의 크기가 줄어드는 만큼 선별 작업 지연을 줄이기 위해 선별기 인식 개선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어시장과 수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어시장 위판장에 설치된 ‘고등어 자동 선별기’는 2~3차례 시범 운영을 거친 뒤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 선별기는 노르웨이 회사가 만든 것으로 4m 길이의 롤러 15개를 이용해 고등어를 크기별로 7단계로 분류한다. 어시장에는 이 선별기가 두 대 설치되어 있고, 시간당 40t 이상을 처리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수작업 방식보다 두 배 빠른 처리 속도다. 가로 19m, 세로 19m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아 공간 활용도 우수하다는 게 어시장 측 설명이다.
어시장은 국내 고등어의 80%를 유통하고 있지만 고등어를 바닥에 쏟아 놓고 사람이 일일이 크기를 분류하는 ‘바닥 위판’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습기에 취약한 나무 상자에 담아 비위생적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게다가 고등어를 선별하는 항운노조 소속 부녀반의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에 어시장은 해양수산부의 ‘산지 위생안전체계 구축 공모사업’을 통해 받은 국·시비 4억 원과 자체 예산 13억 9000만 원을 들여 선별기를 설치했다.
그러나 선사들이 선별기 사용을 꺼리면서 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선별기 성능에 대한 선사들의 신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고등어를 약 20kg 단위로 소형 나무 상자에 분류하는데, 현재 선별기는 대형 상자에 담아 파는 ‘통경매’ 방식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선별기는 아직 이용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기존 분류 방식보다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불안이 있다”고 말했다.
어시장에 고등어 대부분을 유통하는 대형선망수협은 지난달 22일부터 총 2개월 동안 휴어기에 들어갔다. 현재 어시장에 들어오는 고등어는 거의 없으며 선별기는 최소 한 달동안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발을 동동 구르는 건 성어기인 9월이 다가오는 고등어 선사들이다. 올해 어시장은 12년을 끌어온 현대화 사업의 착공을 앞두고 있다. 부산시는 위판 업무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위판장의 3분의 1씩 나누어 공사를 할 예정이지만, 일부 위판 작업은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설치된 선별기가 위판 업무를 돕는 ‘구원 투수’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선사들 외면에 이마저 불투명해졌다. 대형선망수협 관계자는 “휴어기가 벌써 절반이 지났는데 아직 현대화 사업은 시작하지 않았고 선별기마저 믿을 수 없으니 불안하다”면서 “어시장은 고등어 배열을 2, 3단으로 쌓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이 경우 인건비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어시장은 선별기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어시장 관계자는 “설치 초반이라 시행착오가 있지만 선별기는 성공적인 현대화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장비”라면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자들과 계속 회의하고 있다. 단점 보완과 인식 개선을 통해 선별기 이용률을 높일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