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대학교수 그만 두고 초짜 셰프가 되었나
■ 노소동락 / 손일
부산대 교수 명퇴 후 진로 고민
예순 넘어 1인 식당 창업 나서
두려워 말고 하고 싶으면 도전을
표지만 보고 평생 요리사 일을 해 온 분이 책을 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예순 넘은 초짜 셰프의 1인 식당 창업 분투기’라는 부제에 눈이 갔다. <노소동락>의 머리말은 ‘한때는 국립대학 교수였고, 명퇴 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러다 더 늦기 전에 몸 쓰는 일을 해야겠다고 작은 선술집 동락을 차렸다’라고 시작한다. 어쩌면 저자와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일본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했고, 영국에서 지리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7년 2월 부산대에서 명예퇴직했다. 그랬던 그가 취미로 요리학원에 다니는 걸 넘어서 뒷골목에서 식당을 열겠다고 하니 뜯어말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연금도 적당히 받는데 사실 그냥 적당히 놀고먹어도 될 일 아닌가.
그의 유별남은 오기가 나서 썼다는 출사표에 잘 나와 있다. ‘나이가 제법 많아졌다. 지금 죽어도 애석해할 나이가 아니다… 더 이상 내 또래 만나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건 바보짓이다. 실패는 늘 있어 왔고 그게 두려워 포기할 수 없다. 이제 이 나이에 무엇이 두려워 주저하는가? 하고 싶은 건 해야지.’
그때부터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식당 창업이 얼마나 힘든지는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 어렵다. 맛있고 색다르면 당연히 팔릴 거라는 생각은 오판이었다. 새로 만든 음식이 많이 남은 날에는 밤에도 먹고 다음 날 아침에도 먹는 게 요리사의 슬픈 운명이었다. 모든 것을 혼자 하는 60대 1인 요리사는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잤는데, 거의 기절 상태였다고 고백한다.
또 가족이 보기에는 어땠을까. 그의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어머니가 손님께 음식을 서빙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하필이면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한 분야의 고수가 그냥 된 게 아니다. 어느 순간 그는 그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를 나누어 먹고 있는 모습은 지금껏 가족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으로 남았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자신도 나중에 꼭 이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단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한국 실사판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각 에피소드마다 저자가 고심한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다. 간모도키부터 토마토오뎅, 밧테라즈시, 나베, 돼지고기 된장절임까지. 저자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는 간결한 레시피를 언젠가 따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가게 이름 ‘동락’은 노소동락(老少同樂)을 줄인 말 같다. 어른이라면 듣기 싫은 이야기도 해야 한다. 저자는 요즘 맵고 짠 마라가 유행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곱창이 소비되는 것, 많은 청년이 이런저런 이유로 세 끼 모두 매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건강을 염려한다. 그래서 우유, 식빵, 달걀만이라도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세금을 완전히 없애, 온 국민이 이것만이라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무엇이든 우리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도 일침을 가한다. 한우가 물론 좋지만 비싼 소고기 실컷 먹어 보지도 못하고 노년에 영양실조 걸려서야 되겠나는 거다. 완전히 국산만으로 꾸려진 식탁을 원한다면 한 끼 식사비가 얼마가 될까.
동락은 줄을 서는 맛집으로 소문이 났지만 저자는 가게를 접어야만 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인스타그램에 기록했던 글과 사진을 바탕으로 이 책을 꾸렸다. 표지부터 마지막 책장까지 저자가 직접 찍은 음식과 주방, 어린 손주의 표정에는 정이 듬뿍 담겨 있다. 짧고도 긴 시간 동락에서 경험한 일상이 있는 그대로 실렸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 나도 언젠가 식당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면 읽어 보면 좋겠다. 식당에는 그냥 손님으로 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그것도 남는 장사다. 손일 지음/푸른길/284쪽/1만 88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