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대학 축제 단상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5월 전국 대학가 곳곳서 축제 성행
연예인 공연 등 획일성 행사 판쳐
주체적 역할 없는 단순 소비자 전락
자기반성 노력으로 정체성 회복을
5월 한 달 동안 전국 대학가 이곳저곳에서 축제가 열렸다. 부산 지역에서도 각 대학이 축제를 개최했는데 학생들에게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예년과 달리 뉴진스, 지코와 같은 정상급 인기 가수들을 섭외하여 공연했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 축제는 유명 연예인의 섭외 여부에 따라 축제의 흥행과 성패가 결정된다. 그뿐만 아니라 연예인 섭외를 두고 학교 간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섭외 결과로 학교의 서열이 정해지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들은 ‘유명 연예인 모시기’에 열성을 다한다. 부산대의 대동제 제안요청서 연예인 섭외 부문에는 ‘국내 정상급 가수 3팀, 최정상급 가수 3팀 이상’이라는 항목이 명시돼 있고, 부경대 용역제안서에도 ‘총 6팀 중 국내 정상급 4팀 이상 포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또 이들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사용한다. 부산대의 경우 학생 활동 지원 예산이 4억 7000만 원인데, 축제에 이 예산의 약 60%인 3억 원가량을 쓴다고 한다. 부경대의 경우 축제 예산이 약 2억 원인데 연예인 초청에 축제 예산의 60% 이상을 사용했다고 한다. 즉 20분 남짓한 가수 한 팀의 공연에 수천만 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물론 이 돈은 직·간접적으로 학생들이 낸 등록금에서 나온다. 1000원의 아침밥을 먹기 위해 오픈런하는 학생들의 돈으로 연예인들의 배를 채워주는 것은 아닌지, 일회성 행사에 많은 예산을 쓰기보다 학습 시설 개선이나 학생 복지에 예산을 쓰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유명 연예인 섭외에 사용하는 예산의 규모, 합당성도 문제이지만 유명 연예인 섭외에 의존하는 축제 방식도 문제가 있다. 심지어 올해 3월 한 대학에서는 예산 감소로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축제 자체를 취소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대학 축제의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연예인 중심의 대학 축제가 안고 있는 진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이 주체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단순히 축제의 소비자에 머무르고 있다는 데 본질적 문제가 있다.
비단 공연만이 문제가 아니다. 축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학생들은 콘텐츠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에 머문다. 예를 들어 요즘 대학 축제에 가 보면 푸드트럭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이 푸드트럭은 학생들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외부 업체가 운영하는 것이다. 또 인기 있는 부스는 어떠한가. 다양한 이벤트를 걸고 운영하는 외부 기업 부스에 학생들이 몰린다.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이 주체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단순한 소비자로 머문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신호이다. 왜냐하면 가장 창의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할 대학의 주체가 수동적, 종속적 역할밖에 못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학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이지 못하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따라서 연예인 중심의 소비지향적 대학 축제를 시대적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대학 축제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살리고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대학’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여타의 축제와 다른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게임, 가요제, 주점 운영, 연예인 초청 공연 등과 같은 획일적 프로그램은 다른 축제에서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므로 대학 축제에 어울린다고 할 수 없다.
대학의 정체성을 살린 대학 축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과 콘텐츠 중심으로 축제가 기획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부스를 마련해 주는 수준에서 벗어나 아이디어 공모,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 충분한 재정·행정적 지원을 해 준다면 대학생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프로그램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 간 결속력도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 구성원 간 화합에서 나아가 지역사회와 하나 되는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대학과 지역사회는 운명을 같이하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대학은 지역사회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하고 지역사회는 대학 축제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배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현재의 대학 축제는 축제가 열리는 장소가 대학일 뿐 진정한 의미의 대학 축제라고 부를 수 없다. 유명 연예인 초청 공연과 불꽃놀이에 의존하는 대학 축제는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등록금을 하늘에 터트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치열한 자기반성과 자정 노력을 통해 대학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축제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