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장관, 대통령과 3번 통화… ‘채 상병 사건’ 새 국면
‘해병대 채 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중심 인물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나며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인지 주목된다. 이 사건 초기에 제기된 의혹 자체를 강력히 부인한 것과 달리, 이 전 장관은 최근 들어서는 자신은 해당 의혹을 ‘접하지 않았다’며 선을 긋거나 법리적 해석에 초점을 맞춘 설명을 하고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일 낮 12시 7분과 12시 43분, 12시 57분 3차례에 걸쳐 이 전 장관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모두 합쳐 총 18분 40초였다. 통화가 이뤄진 시점은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지시를 어기고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간부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직후였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이 통화하던 사이 박 전 단장은 김 사령관으로부터 보직 해임 통보를 받았다.
이 전 장관이 지난해 8월 2일을 전후로 대통령 경호처장을 비롯한 대통령실·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이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는 이 전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한 발언과 배치되는 정황이다. 그는 지난해 8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통령실로부터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문자를 받거나 메일을 받은 게 없냐’는 질의에 “문자나 전화를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법조계는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은 대통령실 개입 의혹이 아닌 대통령 개입 의혹으로 국면이 전환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사건 처리 과정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인 ‘사건 회수’ 당일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세 차례나 전화했다는 점은 윤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자 이 전 장관의 변호인은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8월 2일 대통령과 장관의 통화 기록은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지시나 인사조치 검토 지시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통화 이전에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지시를 내린 상태였으므로 윤 대통령과 그에 관해 상의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 측은 앞선 발언이 통화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혐의자에서 사단장을 제외하라는 통화가 없었다’는 취지였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증거를 통해 드러난 통화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 새로운 ‘방어선’을 그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야권은 이날 22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특검법을 꺼내 들면서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부결된 ‘채 상병 특검법’과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법안’을 1호 당론법으로 발의한다고 밝혔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수사와 경찰 이첩 과정에서 대통령실, 국방부 등이 개입한 의혹을 규명하겠다는 기존의 내용에 더해 추천 권한을 조국혁신당 등 비교섭단체까지 확대하고, 수사 대상도 공수처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수사하도록 보완했다.
지난해 7월 19일 해병대 채 모 상병이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리며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내성천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 이후 박정훈 대령을 수사단장으로 하는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를 진행했고, 박 전 단장은 지난해 7월 30일 채 상병이 소속된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 관계자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 보고를 받은 뒤에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수사단은 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건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다. 이후 국방부 검찰단은 수사 서류를 경찰로부터 회수하고 박 전 단장을 항명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이후 임성근 사단장을 제외한 해병대 대대장 2명에 대해서만 범죄 혐의를 물어 해당 사건을 경찰에 재이첩했다.
그러나 사건 수사 이후 외압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이어졌고, 지난 2일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다시 돌아와 지난 28일 재의결이 이뤄졌으나 최종 부결되면서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