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모더니즘 시? 요즘 시가 재밌어졌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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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이야기와 놀다> 출간
6년 쓴 시 묶어낸 7번째 시집
“의인화된 문장의 주체적 행동”


일곱 번째 시집 <이야기와 놀다>를 출간한 김경수 시인이 그의 시에도 등장하는 ‘모모스 커피점’ 앞에 서 있다. 일곱 번째 시집 <이야기와 놀다>를 출간한 김경수 시인이 그의 시에도 등장하는 ‘모모스 커피점’ 앞에 서 있다.

김경수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이야기와 놀다>를 출간했다. 2018년 <편지와 물고기>를 낸 지 6년 만이다. 김 시인은 시집 맨 앞 ‘시인의 말’에서 “진정한 현대 시인이 되려는 것은 구도자의 길과 같다. 시를 창작하는 데 있어 새로운 기법을 얻기 위해 언어의 사냥꾼이 되어 도시를 어슬렁거렸다”라고 말했다. 구도자와 사냥꾼의 조합, 그 결과물이 궁금해졌다.

‘나는 앉아 있다/문장이 앉아 있는 나를 쓴다/문장과 문장 사이에 바람이 분다/문장이 쓰는 단어는 뒤죽박죽이다/내가 어떤 문장도 떠올리지 못할 때/문장이 나의 내면을 쓴다/(중략)/책상 위에 놓인 편지에 쓰다가 만 시(詩)가/저녁 늦게까지 나를 기다린다.’ 시 ‘문장이 나를 쓴다’의 일부분이다. 재밌게 잘 읽히는데 정신을 차려 생각해 보면 당황스럽다. 어떻게 문장이 주체가 되어서 나를 기다리고, 나의 내면을 쓴다는 말인가.

‘아침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처럼 시작된다/이때 적절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책이 되어야 하고/오래된 라디오가 되어야 하고 노래가 되어야 한다/식탁 위에 있는 꽃병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중략)/이야기가 되고 담론이 되고 토론이 되고 논쟁이 되어/상처가 나기도 하지만/이야기가 없는 삶은 외로운 삶이고/(중략)/나의 삶이 아무리 슬픈 내용이라도/이야기는 바람 신발을 신고 즐겁게 춤춘다.’ 서정적인 표제시 ‘이야기와 놀다’는 인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떤 부분은 사회에 대해 은근히 비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김경수 시인이 자주 들르는 모모스 커피점에 앉아 있다. ‘모모스 커피점’은 <이야기와 놀다>에도 등장한다. 김경수 시인이 자주 들르는 모모스 커피점에 앉아 있다. ‘모모스 커피점’은 <이야기와 놀다>에도 등장한다.

김 시인은 “시인이 절대자가 되고 시가 종속이 되는 것을 해체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여기서 더 들어가 문장을 의인화해 문장이 주체가 되어 말을 걸고 문장이 걸어가도록 하니 사람들이 재미있어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표현 기법을 사용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모더니즘 시인은 혁신적인 표현기법을 추구한다. 말이 안 되는데, 또 말이 되니까 재미가 있지 않나. 한 줄 한 줄 읽으면 어려운데 그냥 쭉 읽으면 이해가 된다. 피카소의 그림 같은 시라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부연했다. 주제를 생각하지 말고 시를 느끼라는 이야기다.

김 시인은 부산시의사회 회장과 대한의사협회 회장 직무대행을 역임한 의사 시인이다. 그는 “의사의 삶은 무미건조한데 시를 쓰는 순간은 너무 행복하다. 지금까지 계속 변화를 추구해 왔고 이번 시집으로 내 색깔을 찾은 것 같다”라고 만족해했다. 김경복 평론가는 “시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가치를 영원히 보존하는 성스러운 기록이다. 이번 시집에는 깨달음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라는 해설을 붙이기도 했다.

‘증오가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에서/주위에는 서러운 눈빛으로 하늘의 별이 되는/쓸모없는 인생들이 많아진다/쓸모없는 인생이다라는 문장은 처음부터 없었다/우리는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끝으로 ‘쓸모없는 인생은 없다’는 이야기를 잠언처럼 들려주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이야기와 놀다> 표지. <이야기와 놀다>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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