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묻지 마 공모 사업, 누가 누굴 탓하나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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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중서부경남본부 차장

정부 긴축 재정에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정부나 공공기관 ‘공모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단체장 입장에선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면서 치적도 쌓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런데 괜한 욕심에 ‘일단 되고 보자’는 식으로 사업을 따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남 고성군은 2019년 해양수산부 공모를 통해 유치한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사업권을 최근 반납했다. 스마트양식 클러스터는 노동집약적인 양식산업을 디지털화해 미래 식량산업으로 전환할 거점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한국남동발전이 운영 중인 삼천포발전본부 내 회처리장 부지에 국비 220억 원을 포함해 400억 원을 들여 스마트양식 시험·실증 센터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남동발전이 400억 원을 들여 온배수 공급 설비를 제공하기로 해 지자체와 기업이 협력하는 모델로도 기대를 모았다. 계획대로라면 1780억 원의 생산 유발과 586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 1112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부족한 경제성 탓에 실제 사업 추진은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사업비를 감당 못 한 민간사업자가 사업 포기를 선언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에어돔 구장’이나 ‘일자리연계형 지원주택’도 마찬가지다. 에어돔은 사계절 운영 가능한 체육시설이다. 고성군은 스포츠마케팅 인프라 구축을 명분으로 문화체육관광부·국민체육진흥공단 공모에 도전,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허술한 사전 용역 탓에 시작도 못 한 채 하세월 하다 1년 만에 백지화했다. 뒤늦게 따져보니 실제 공사비와 운영비를 고려할 때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이유였다.

일자리연계형 지원 주택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 노동자나 항공 등 전략산업 종사자에 공공임대아파트를 공급해 지역 정착을 유도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고성군 자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총사업비 944억 원 중 정부 재정 지원은 348억 원이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군비로 충당해야 한다. 자칫 에어돔, 스마트양식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통영시 ‘삼도수군통제영 실감콘텐츠 체험존’(통영VR존)은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된 경우다. 통영VR존은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고용산업위기지역 문화콘텐츠 지원을 받아 국비 25억 원에 도비 7억 5000만 원, 시비 17억 5000만 원을 보태 조성됐고, 2020년 5월 개장했다. 연평균 이용자 10만 명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하루 20명에도 못 미쳤고 불어난 적자에 사실상 폐관 수순을 밟고 있다.

무분별한 공모 사업은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 재정을 압박하는 족쇄가 된다. 이는 행정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져 지역민에게 돌아온다. 횡성군의회는 2019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공모사업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에 따라 집행부는 10억 원 이상 공모사업은 신청 전 의회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주민과 지역에 꼭 필요한지, 사업을 수행할 역량은 충분한지 따져볼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고성군과 통영시도 각각 2019년과 2023년 같은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볼 때 제대로 작동 했는지 의문이다. 이제 와 집행부 탓만 할 게 아니라 악순환의 고리 끊어내기 위해 지방의회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곱씹을 필요가 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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