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에서 공무원으로…다른 길에서 이루는 ‘가수의 꿈’
[인터뷰]김량은 부산시 예산담당관실 주무관
시장-MZ공직자 대화 자리서 공연
기획사에서 2년여간 아이돌 준비
데뷔 무산 좌절 겪고 공무원 전향
지자체 행사, 공연 등 노래 계속
"예산실에 노래 잘하는 주무관님 있다면서요?"
김량은 부산시 예산담당관실 주무관은 최근 부산 공무원 사이에서 스타가 됐다. 지난달 박형준 부산시장과 MZ세대 공무원들이 함께한 ‘소통·공감 타임’에서 오프닝 공연을 펼쳤기 때문이다. 김 주무관은 거미의 ‘어른아이’와 에일리의 ‘하이어’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김 주무관은 "그날 이후 주위에서 연락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김 주무관은 ‘기획사 연습생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게 꿈이었어요. 부모님은 반대하셨어요. 그러다 고3 여름방학 때 대형기획사가 부산에서 연습생을 뽑았어요. 오디션에서는 떨어졌지만, 행사를 진행한 학원에서 가능성이 있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주셨어요.”
그때부터 예술대학 입시를 준비했고, 백석예술대학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으로 입학했다. “학교생활이 진짜 재밌었어요. 친구들과 어울려서 합주하고 공연하는 게 좋았어요. 우연한 기회에 중소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아이돌 준비를 하게 됐어요.”
김 주무관은 2년여간 연습생으로 지내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놨다. “다이어트 압박이 너무 심했어요. 대표가 외모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먹어라’고 하더라고요. 영양실조 증상이래요. 거식증이었겠죠.”
혹독한 다이어트는 상상하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저는 파워풀한 가창이 특기였거든요. 그런데 몸이 너무 말라서 노래가 안 되는 거예요. 억지로 억지로 연습했어요. 나중에는 먹고 나서 토하는 지경까지 갔어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목이 상해버렸죠.”
결국 다른 연습생들끼리 그룹 데뷔를 했고, 김 주무관은 기획사를 나왔다. “1, 2년 방황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오디션 보고 버스킹도 조금씩 했어요. 하지만 목이 너무 상해서 가수는 불가능한 상태였어요.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죠. 문득 이제 노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공무원이 잘 맞겠다고 판단했다. 노량진에서 2년 반 정도 ‘공시생’이 됐다. 응시했던 마지막 시험에서 부산시·국가직·서울시에 다 붙었고, 고향인 부산을 택했다. 서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공무원이 되면서 ‘직업’으로 노래를 놓았지만 ‘꿈’으로는 놓지 않았다. “목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니 무대가 그리웠어요. 중간중간 공연도 하고, 연제구청에서 일할 때 행사에서 노래도 했어요. 회식 자리나 퇴임연 같은 자리도 요청하면 즐겁게 해요. 사람들이 제 노래에 감명받는 게 좋아서 음악을 시작한 거라 아드레날린이 솟습니다. 그런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김 주무관은 “예전엔 꿈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다른 방식으로 꿈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도전해 봤다는 것 자체가 인생에 있어서 큰 성과인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도 즐겁습니다. 예산실에 있으면서 시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계속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뿌듯해요. 취미로 노래를 하니 덜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김 주무관은 “세상에는 길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린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SNS 활동, 강사, 다른 장르 등 노래를 하는 데도 다양한 길이 있어요. 저처럼 취미로 즐겨도 되고요. 직장을 잡고 나니 다른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러니 꿈을 위해 죽을 각오로 달려보고, 그러다 실패해도 크게 좌절하지 않았으면 해요.”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