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인식 너머의 진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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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형제 '궤적-목하, 세계진문'

무진형제 '궤적-목하, 세계진문'.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무진형제 '궤적-목하, 세계진문'.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무진형제는 친남매로 구성된 아티스트 그룹으로, 견고하고 조화로운 형태로 비춰지는 동시대 사회시스템의 생존방식에 대해 탐구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들은 특유의 서정성과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예기치 못한 사고의 영역을 개척하고자 시도하는데,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부산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궤적(櫃迹)-목하, 세계진문(目下, 世界珍門)’에서는 현재의 시공간과 고전문학의 구성요소를 연결짓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다. 영상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서울 잠실에 위치한 롯데타워이며, 이미지 위에 중첩되는 텍스트는 공상과학 소설 분야를 개척한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의 대표작 〈해저 2만리〉(1869)의 변형된 구절이다. 80여 점의 스틸컷이 흑백 슬라이드 형식으로 넘겨지는 모습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고도로 발전된 사회의 상징물인 롯데타워와 150여 년 전 공상과학 소설과의 연결성을 어디에서 발견하고 있는 것일까. 〈해저 2만리〉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19세기 중반 세계 각지의 바다에 출몰한 괴생명체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원정대가 결성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초현대적 과학 기술로 제작된 잠수함인 ‘노틸러스호’였으며 그들은 그 잠수함을 타고 해저 세계를 탐험하게 된다.

무진형제가 소설 속 잠수함과 롯데타워의 유사성에 주목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를테면 소설 속 주인공인 아로낙스 박사와 현대인의 모습은 무척 닮아있다. 아로낙스 박사는 오로지 잠수함 속 유리창 너머로 관찰한 세상을 분류하고 기록하여 나름의 지식 체계를 생성하는 인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오늘날의 또 다른 잠수함이자 거대문명인 초고층 빌딩 내부에서 보여지는 세계만을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고층빌딩 속의 세계마저 각종 분류표와 화살표, 내부 맵과 같은 체계화된 도식으로 분류되어 있다. 오직 이 곳에서만 얌전히 머무는 일이 습관이 되어버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과 감각을 넘어선 무한한 우주 그리고 미지의 카테고리 어느 한편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진리에 대해 그 어떤 의문도, 호기심도 품지 않게 된다.

과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계를 관통하는, 변하지 않는 진리는 존재하는가. 쥘 베른은 이른 시기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깊은 바다 속 세계를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만으로 그려내며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그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으로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은 첨단 테크놀로지를 도구 삼아 새로운 진리에 보다 쉬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이것이 우리의 눈과 귀를 일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유리창에 부딪혀 이 빌딩을 빠져나갈 수 있는 출입문으로 향하는 방법을 잊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요즘이다.

이해리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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