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산유국의 꿈
‘포항 앞바다서 산유국 꿈 실현되나’ ‘산유국의 꿈, 대구·경북 앞바다서 실현된다’ ‘포항, 한국판 두바이 되나’ ‘영일만에 석유 매장 가능성, 포항 산유국 최전선 서나’. 이는 대구·경북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들의 지난 4일 자 1면 주요 기사 제목이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경북 포항 앞 EEZ(배타적경제수역)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힌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큰 기대감을 나타낸 것이다. 같은 행정·생활권인 포항 일대 동해의 유전 개발 소식이라 다른 지역보다 더 반갑게 다가왔을 테다.
같은 날 서울지역 일간지들이 쏟아낸 기사에는 산유국에 대한 기대와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혼재한다. 신중론은 막대한 비용이 들고 과정도 지난할 석유 시추탐사나 채굴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으며 경제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이번 발표를 취임 후 첫 국정 브리핑을 통해 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21%까지 추락한 대통령 지지율을 만회할 의도로 설된 유전 얘기를 꺼냈다는 게다.
산유국의 꿈이 국면 전환용 정치 카드로 이용되는 건 결코 달갑지 않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나빠진 민심을 되돌릴 만한 희소식이 되기에 충분하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 국민을 늘 괴롭히는 문제 중 하나가 자꾸만 오를 뿐 내릴 줄 모르는 기름값이어서다. 우리도 한때나마 세계 95번째 산유국인 시절이 있었다. 1998년 울산 앞바다에서 소규모 유전이 발견돼 2004년부터 17년간 4500만 배럴의 천연가스와 초경질유를 생산했다. 1959년 시작된 국내 대륙붕 석유 탐사의 유일한 성과였으나 2021년 채굴이 끝나 못내 아쉽다.
포항 앞바다 못지않은 관심이 요구되는 곳이 1970년대 산유국 꿈을 처음 심어준 7광구다. 제주 남쪽 먼바다에 위치한 7광구는 한일 공동개발구역(JDZ)으로 지정된 뒤 1986년 일본이 경제성이 없다며 개발 중단을 선언하는 바람에 한국 정부도 손을 놓았다. 이곳은 양국 공동개발 시효가 2028년 6월까지인 데다 중국도 대륙붕 관할권을 주장하는 해역이다. 이때까지 시효 연장이나 개발을 위한 외교 노력이 없으면 한중일 해양영유권 분쟁이 우려된다. 포항 쪽 유전 개발 예정지는 우리 EEZ 안에 있다. 세계 5대 원유 수입국이자 6대 석유제품 수출국인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