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열차’를 타고 돌아본 달궈진 지구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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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 살인 / 제프 구델

해상폭염 발생 땐 생명체 싹쓸이
빙하 녹으며 병원체도 같이 풀려
“오늘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2015년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인도를 강타했을 당시 뉴델리의 아스팔트 도로마저 지열에 녹고 말았다. 연합뉴스 2015년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인도를 강타했을 당시 뉴델리의 아스팔트 도로마저 지열에 녹고 말았다. 연합뉴스

2023년은 경계가 허물어진 순간으로 남을 것 같다. 6월부터 12월까지 매달 관측 사상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됐으니 말이다. 앞으로 매해가 사상 최고로 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 신문에는 지구의 평균기온이 2023년 6월 이후 12개월 연속 ‘가장 따뜻한 달’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때맞춰 나온 <폭염 살인>은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이 ‘열국 열차(熱國列車)’를 타고 돌아본 달궈진 지구의 모습에 대한 폭염 르포르타주다.

더위를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로만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바다에도 폭염이 닥친다. 2013년 여름 북태평양 텍사스만 한 지역에 설형고기압이 자리 잡으면서 해양폭염이 벌어졌다. 설형고기압(楔型高氣壓)은 주변 공기를 가둬 두고 온도를 높이는 뚜껑 역할을 한다. 가장 먼저 식물성 플랑크톤이 몰살했고,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크릴 같은 자그만 유기체들이 굶어 죽었다. 크릴이 사라지자 청어와 정어리의 개체수도 함께 줄었다. 그 이후 수천 마리의 고래와 바다사자 시체가 해변으로 떠밀려 왔다.

그 피해는 바다에만 그치지 않았다. 알래스카 대구 양어장은 폐업하고, 어부들은 줄도산했다. 태평양 연안의 거대한 켈프 숲은 자취를 감추었고, 바닷새 100만 마리가 굶어 죽었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얼마나 단단히 얽혀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이처럼 확실한 증거도 없다. 기온이 점점 올라가면서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나갔으니 하는 말이겠지만 코로나19는 다른 병원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온순한 편에 속했다고 한다. 만약 코로나19가 전파가 잘되면서 치명률이 75퍼센트에 이르렀다면 인류 문명 자체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을 것이다. 더위는 지구의 질병 알고리즘을 새로 쓰고 있다. 미생물들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알려진 박쥐들이 점점 먹이를 구할 데가 사라지면서, 결국 어딜 가도 먹이를 찾을 수 없는 때가 올 거다. 궁지에 몰린 박쥐들은 사람들 집의 마당까지 찾아 들어올 수밖에 없다.

지금 북극에서는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지난 수만 년간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얼음에 갇혀 있던 병원체들이 자유롭게 풀려나고 있다. 야생의 대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수십 년 안에 서로 접촉할 일이 없던 종들이 처음 조우하는 일이 수십만 회는 벌어질 것이고,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 안에 들어가는 종간 전파도 수만 회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시작에 불과했다니….

지난달 멕시코 남부 연안에서는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 100마리 가까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인은 심각한 탈수와 고열 증세였다. 2021년 미국 태평양 북서부 연안에서는 새끼 독수리 수십 마리가 불구덩이처럼 달궈진 둥지 위에서 투신했다. 통계에 따르면 기온이 올라갈 때마다 자살과 유산이 늘어난다. 혐오발언과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강력범죄 빈도도 높아진다. 지구온난화가 가속될수록 폭염의 기습은 더 잦아지며 예측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극한 더위가 불러올 죽음의 연쇄 반응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heat will kill you’로 말 그대로 더위는 당신을 죽일 수 있다. 부산 같은 한국의 해안 도시들도 전 지구적 기후 이주 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니 더 우려스럽다.

우리는 이대로 끝장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저자는 “내가 탄 배에 물이 차오르는데 무슨 일이냐고 묻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당장 뭐라도 집어 들고 물을 퍼내야지”라고 행동을 촉구한다.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위험을 적극 알리기 위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처럼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화하는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십년간 기후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저널리스트가 있으니 이런 책이 나온다. 제프 구델 지음/왕수민 옮김/웅진지식하우스/508쪽/2만 3000원.


<폭염 살인> 표지. <폭염 살인>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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