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어공주와 아시아인 제다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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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 아리안 샤비시

인종차별, 여성혐오, 캔슬컬쳐 등
뜨거운 논쟁 대해 'PC' 관점 분석
본질 꿰뚫는 정교한 논리에 감탄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표지.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표지.

최근 서구의 지성들 간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이 치열해 보인다. 이와 관련한 번역서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3월엔 르네 피스터의 <잘못된 단어>(문예출판사) 한국어판이, 4월에는 수잔 니먼의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생각의힘)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공교롭게도 두 책은 모두 PC주의를 비판적으로 대한다. 그러나 논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대체로 찬반이 비등하게 갈린다는 의미다. PC주의에 대한 변명의 목소리가 나올 때도 됐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마침 <우리에게 논쟁이 필요하다>가 출간됐다.

쿠르드계 영국인이며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우리에겐…>를 통해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캔슬 컬처(손절문화) 같은 뜨거운 이슈들을 ‘PC’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 PC주의 자체를 하나의 이슈로 삼은 챕터에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는 일부 비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PC주의를 마냥 찬성하지는 않기에, “자, 나를 설득해봐”라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펼쳐 목차를 둘러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챕터. ‘남자는 쓰레기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창 논란이 됐던 ‘잠재적 가해자’론이 떠오른다. 목차부터가 논쟁적이다.

2017년 영국의 전 국가대표 축구 선수 트레버 싱클레어가 음주운전으로 체포됐다. 그는 자신이 흑인이라서 체포됐다고 생각했다. 영국에 사는 흑인은 차를 세우고 음주 검사를 응하라는 요구를 백인에 비해 아홉 배나 더 많이 받는다. 체포 당시 그는 경찰관에게 “백인 ○새끼”라는 욕을 했다. 그 결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외 ‘인종 차별적 공공질서 위반죄’에 대한 벌금형도 받았다. 이후 영국 사회에서는 흑인의 백인에 대한 욕설이 인종 차별인지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백인이 흑인을 낮춰부르는 ‘니그로(negro)’는 명백하게 인종 차별의 언어다. 그런데 왜 반대의 경우는 논쟁이 되는가. 저자는 말한다. “인종 차별은 구조적 업악의 대상을 향할 경우에만 성립한다”고. 저자는 같은 논리로, 구조적 억압의 대상인 여성이 남성을 지칭해 부르는 ‘쓰레기’라는 발언(한국의 경우 ‘잠재적 가해자’) 역시 차별의 언어도, 혐오의 언어도 아니라고 말한다.

책은 인종 차별 외에도 다양한 논쟁적 물음을 던진다. 흑백 논리나 명백한 선악 구조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라 더욱 논쟁적이다. 소수자가 더 약한 소수자를 억압하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예술가와 예술작품은 분리해 봐야 할 것인가. 논쟁적 물음에도, 저자는 철학자답게 본질을 꿰뚫는 식견을 제공한다. 다만 저자의 논리는(PC주의의 논리가 그러하듯) 탄탄하고 정교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논쟁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논쟁을 만든다. 앞선 사례에서 ‘혐오가 구조적 억압의 대상을 향할 경우에만 성립’됨을 인정하더라도(물론 인정하지 않는 주장도 있다), 일부에선 ‘현재의 여성이 구조적 억압의 대상이냐’라는 다른 논쟁을 끄집어낸다. 물론 여기에 대한 저자의 답 역시 명백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저자와는 달리 사안에 따라 대게 오락가락한다. 흑인이 구조적 억압의 대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영화 ‘인어공주’의 흑인 여주인공을 보며 디즈니의 PC주의를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스타워즈 새 시리즈 ‘애콜라이트’에서 아시아인(이정재)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디즈니를 PC주의로 몰아가는 일부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다. 그래서 오히려, 어떤 ‘~주의’와는 무관하게, 어떤 주장이든 상관없이, 여전히 논쟁은 필요하다. 누구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락가락하고 비논리적인 스스로를 설득당하게 하기 위해서다. 아리안 샤비시 지음/이세진 옮김/교양인/412쪽/2만 2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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