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파묘'의 파격과 관객의 위력
김남석 문화평론가
'파묘'의 흥행으로 본 한국영화
K-콘텐츠 지지하는 팬층 갖춰
한국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에서 창작방식 고민해야
‘파묘’의 위력은 심상치 않았다. 일반 관객들에게 선호되는 장르가 아니었음에도 흥행 면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는 국내외 흥행 성적을 보여 주었다. 해외에서 나타난 ‘파묘’의 흥행 성적은 비단 누적 관객 수의 증가에만 있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파묘’를 바라보는 다른 나라 이들의 시선이었다.
한국 영화는 2003년 중요한 정점을 보여 주었다. 이 해에는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이 산출되었는데, 두 작품은 완성도와 작품성으로 세계적 문제작에 오른 경우였다. 한국 영화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주목되는 작품으로, 이미 세계적으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는 경우였다. 하지만 그 시기, 한국 영화는 놀라운 우수성을 동시대 전 세계 관객과 함께 할 수는 없었다. 개별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그때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높지 않은 시기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 영화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영상 콘텐츠는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도 점차 알려져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한국 영화의 고전 혹은 명작으로 인정하고 있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이 늘어났고, 한국 영화(영상 콘텐츠)에 대한 팬이 늘어났고, OTT를 통해 공개되는 작품도 늘어났다. 이에 한국형 영상 콘텐츠에 대한 일정한 잠재적 수요 또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국형 영상 콘텐츠가 우수하기만 하다면, 언제든지 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이 생겨난 셈이다.
‘파묘’의 흥행은 잠재적 지지층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영화 자체가 지닌 개성과 독특함도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컸지만, 그동안 누적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신뢰와 기대 역시 그러한 호소력의 한몫을 담당했다. 관객 지지층의 주목되는 특성 중 하나는, 영화를 통해 한국의 상황과 역사 그리고 주변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포함된 점일 것이다. 과거 한국 콘텐츠는 역사적·사회적·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외국인들 사이에서 이해가 곤란한 텍스트로 전락할 것을 스스로 우려해야 했다. 이른바 자발적 시청을 기대하기 곤란했던 셈이다.
그래서 외국 수출 혹은 해외 시장을 겨냥하는 이들은 한국적 특수성, 예를 들면 고유한 역사나 분단의 상황 혹은 전래 문화(예술) 등을 영화 내에서 부각할 수 없었고, 인류적 보편성이나 문화적 통용성 위주로 영화를 정리해야 했다. 어찌 보면 ‘파묘’는 이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례이다. 물론 ‘파묘’에서 풍수지리와 일제 강점 그리고 친일파 문제를 거론한 것이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히려 잠재적 관객층이 이러한 제약을 해소하며,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놀랍고, 다시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기 전에, 누가 그 무엇을 보고 평가하고 즐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영화 제작이 개인적 기호와 역량에 기반한다 해도, 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시선으로 작품을 볼 수 있다면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겠지만, 문화 예술의 속성상 이제는 이 고민도 함께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더구나 이 점을 고민해야 했을 때 고민하지 않으며, 기껏 거둔 문화적 높이 또한 망실되는 사례 역시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무엇을 만드는 일은 늘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의 새로운 도약이 ‘파묘’를 기점으로 다시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지금은, 그때 가지지 못했던 관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런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