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10명 중 7명 “휴진 동참”… 현실화 땐 의료 파국
의협 역대 4번째 집단 휴진 결정
투표자 73.5% “단체 행동 참여”
환자들 “본분 잊은 몰염치 결정”
유감 표한 정부, 기존 입장 재천명
입장 변화 없어 의정 갈등 장기화
의료계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과 의료개혁에 반발해 결국 ‘집단 휴진’ 카드를 빼 들었다. 정부와 의료계의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한 지 4개월여 만에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의료계는 정부에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촉구하는 반면, 정부는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어 갈등이 지속될 전망이다.
■18일 전면 휴진·총궐기대회 개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9일 의협 회관에서 전국의사대표자회의를 열고 전면 집단 휴진을 결정했다. 의협은 지난 4~7일 실시한 대정부 강경 투쟁 여부 찬반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집단 휴진 결정을 내렸다. 투표 결과에 따르면 총투표자 7만 800명 중 90.6%(6만 4139명)가 의협의 대정부 투쟁을 지지했다.
집단 휴진을 포함한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투표자는 73.5%(5만 2015명)로 집계됐다. 의협 측은 “정부의 무책임한 의료 농단, 교육 농단에 맞서 대한민국 의료를 살려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날 것”이라며 “범의료계 투쟁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총력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의 집단 휴진 결정은 역대 4번째다. 의료계는 △의약분업(2000년) △원격의료·영리병원 도입(2014년) △의대 증원(2020년) 당시 집단 휴진을 결정했다. 의료계는 4년 전인 2020년에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자 집단 휴진을 결정했다. 2020년 당시 집단 휴진 여파는 적었다. 의협이 집단 휴진을 결의했지만, 실제 휴진에 동참한 동네 병의원은 20~30%에 그쳤다.
의협은 이번 집단 휴진은 예전의 집단 휴진 때와 다를 것이라고 자신한다. 의협 최안나 대변인은 “이번 투표 결과는 그동안 투쟁에 대해서 참여 의사를 물은 것 중 가장 압도적인 결과”라며 “의협을 중심으로 행동하면서 이제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의료개혁 중단 없다” 강조
정부는 의협의 집단 휴진 결정에 유감을 표하고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추진 의사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료계의 집단 행동은 비상진료체계에 큰 부담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길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한 총리는 “의료계의 총파업과 전체 휴진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의료계를 설득하고, 의료 공백 최소화에 모든 전력을 쏟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맞춘 ‘의대 교육 선진화 방안’도 발표했다. 늘어난 의대생들의 원활한 교육을 위해 △신규 교수 채용 △의대 교육공간 증개축, 신축 공사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지역특화 수련과정 개발 등을 약속했다. 이는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대 교육 부실화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환자 단체와 시민단체는 의료계의 집단 휴진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환자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한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결정”이라며 “정당성도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정부가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는 등 강압적 조치를 해제했는데도 의협과 의대 교수들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 나갈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강 대 강 대치 지속 불가피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 정국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정부가 의대를 포함한 2025학년도 대입 모집계획을 공식 발표했고,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정부는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더 이상 혼란을 제공하면 안 된다며 의대 증원을 강행하겠다는 태세다.
반면 의료계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와 의료개혁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전면적인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고, 단체 행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현재로선 협상 여지가 차단된 상태다.
환자 불편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020년 집단 휴진 당시 실제 참여가 낮았던 상황과 달리 동네 병의원이 동참할 경우 의료공백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