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 ‘판도라들의 포트럭’ 16일까지 개최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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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사진가협회 특별 기획전
호기심에 근원 둔 작가의 예술 사색

김종옥,꽃밥 #1,30x3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KOWPA 제공 김종옥,꽃밥 #1,30x3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KOWPA 제공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의 죄는 ‘호기심’이었다. 제우스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판도라는 상자를 열었고 인간 세상엔 온갖 재앙이 퍼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인간사 불행의 근원을 여인의 호기심에 두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상자 속 희망에 위안을 얻게 한다. 긴 역사 속에서 이 여인의 호기심은 신의 창작 행위와 구별되는 인간 문명의 진화와 예술 행위의 원천으로 꼽히기도 했다.

2024 한국여성사진가협회(KOWPA) 특별기획전인 ‘판도라들의 포트럭(pot-luck)’에는 이런 호기심에 근원을 둔 일곱 작가의 예술적 사색이 담겼다. 전시에 참여한 김연화, 김종옥, 김주영, 박정선, 윤재경, 이미경, 조성옥 등 판도라 7인은 상자 속에서 찾은 자신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펼쳐낸다. 이번 특별 전시는 한국 여성사진가들의 자질향상과 권익 신장, 사진 매체의 예술적 탐구, 사진문화에 기여를 기본 취지로 한다. 작품은 11일부터 오는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김영섭 사진화랑에서 만날 수 있다.

김연화,감자에서 싹이나서, 90x 64.3cm,Archival Pigment Print, 2022. KOWPA 제공 김연화,감자에서 싹이나서, 90x 64.3cm,Archival Pigment Print, 2022. KOWPA 제공

김연화 작가의 ‘감자에서 싹이 나서’ ‘숨은그림찾기’ 등은 할머니가 생전에 사셨던 가정집이 철거되는 현장에서 수집한 폐기물로 구성한 정물 사진이다. 이 조형물에는 삶의 특별함을 집어삼키는 일상성의 승리에 순응하고 대응하는 작가의 사색이 담겨있다. 부조화 속 조화, 위태로운 균형 등이 곧 사라질 작품의 의미를 더한다.

김종옥 작가의 ‘꽃밥’은 작가의 어린시절 기억 속에서 탄생된 작품이다. 뒷동산에 피어있던 진달래와 가족의 정을 상징하는 밥그릇을 조합한 이 작품은 기억을 먹고 사는 사람의 정서를 드러낸다. 과거의 기억이라도 지금 여기에서 선명하게 요동치고, 영양분을 제공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걸 김 작가는 작품으로 전달한다.

김주영,그날,53x78cm,Archival Pigment Print, 2021. KOWPA 제공 김주영,그날,53x78cm,Archival Pigment Print, 2021. KOWPA 제공

김주영 작가의 ‘그날’엔 자연과 인공의 빛깔이 공존한다. 매직 아워(magic hour)라는 짧은 시간에 놓인 골목길은 하늘의 푸른빛과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마법이 걸린 듯한 신비한 풍경을 뿜어낸다. 작가의 시선은 한낮의 선명한 경관보다 밤에 짙은 음영 속에서 아스라이 불 켜진 누군가의 창가로 향해 눈길을 끈다.

박정선, 2024 Her #1,68x 68cm,Archival Pigment Print 2024. KOWPA 제공 박정선, 2024 Her #1,68x 68cm,Archival Pigment Print 2024. KOWPA 제공

박정선 작가의 ‘HER’(허)는 자화상이다. 소제목은 ‘Red, Blue, Yellow’(레드, 블루, 옐로우)다. 작가에게 각인된 여러 상황과 그로 인한 감정들을 색으로 은유한 작품이다. 과거 몰랐던 자신을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작품 속에서 배경·꽃과 같은 상징물과의 데페이즈망식 구성에서 엿볼 수 있다.

윤재경, 器 物 #08, 90x67cm,Archival Pigment Print,2023. KOWPA 제공 윤재경, 器 物 #08, 90x67cm,Archival Pigment Print,2023. KOWPA 제공

윤재경 작가의 ‘器物/기물’ 연작에선 평온과 평정을 찾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느낄 수 있다. 윤 작가는 동양적인 사발이나 물건에서 균형과 평형의 기운을 찾아 작품에 담았다. 또 빛을 조절해 사물의 가장자리 일면을 암흑의 공간에 감추고, 나타나며 사라지는듯한 연기 기법으로 작가의 감정과 체험을 작품에 녹여냈다.

이미경,모의고사1,2,3시리즈,각125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KOWPA 제공 이미경,모의고사1,2,3시리즈,각125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KOWPA 제공

이미경 작가의 ‘꿈의 조각’ 연작은 이 작가와 대입 수험생들이 공동 작업한 결과물이다. 학생들은 환희와 기쁨, 아쉬움과 허탈함을 영어·수학·한국사 등 교과서를 해체하고, 던지고, 부치는 등 재조합하는 행위로 표현했다. 작가는 조명을 통해 중심과 주변을 조절해 작품의 온도를 강렬하게 구성했다. 이 작가는 이 작품으로 모든 학생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성옥, 데자뷰 인 셰이드 오브 그레이#027, 80x 60cm,Archival Pigment Print, 2023. KOWPA 제공 조성옥, 데자뷰 인 셰이드 오브 그레이#027, 80x 60cm,Archival Pigment Print, 2023. KOWPA 제공

조성옥 작가의 ‘DVSG’(Déjà vu In Shades of Gray·데자뷰 인 셰이드 오브 그레이)는 중립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회색빛이 두드러진다. 작품엔 고요한 회색빛 배경 위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부조로 각인돼 눈길을 끈다. “모든 기쁨과 모든 슬픔이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는 감정 서사와 농도를 전해 의미를 더한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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