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올림픽 오지 마세요”
36년 전 열린 서울올림픽은 말만 ‘서울올림픽’이지 실상은 ‘대한민국올림픽’이나 다름없었다. 올림픽 명칭이 개최 도시 이름을 따라 정해지기에 서울올림픽이 되었지 실제로는 대한민국 전체가 동원됐던 국가 행사였다. 전 세계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며 서울뿐만이 아니라 전국 주요 도시와 성화 봉송로 구간의 마을들도 틈만 나면 도로변을 청소하고 꾸미느라 북새통을 떨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외국 방문객이라도 더 많이 우리나라를 찾아서 좋은 인상을 남기기를 바랐다.
지구촌 행사 중 규모가 가장 큰 이벤트인 올림픽은 이처럼 개최 사실 만으로도 유치 도시는 물론 그 나라에도 큰 영광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금세기 들어선 올림픽의 위상과 인기도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근대올림픽이 3세기를 지나면서 외형적으로 지나치게 비대하고 물량 중심으로 변한 올림픽을 개최지 시민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개막 팡파르를 불과 한 달여 앞둔 2024년 하계올림픽 개최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 이런 조짐이 노골적으로 일고 있다. 파리 시민 일부가 개막일인 7월 26일이 다가오자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 “파리에 오지 말라”는 동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아예 올림픽을 반대하는 보이콧 영상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언론이 아닌 미국 뉴욕타임스의 보도이긴 하지만 실상이 그렇다면 ‘올림픽의 수모’가 아닐 수 없다.
파리 시민들은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올림픽을 왜 이렇게 홀대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치솟는 물가와 부족한 숙소, 범죄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올림픽 기간 중 2배로 오르는 파리 지하철 요금 등 각종 물가 급등에다 많은 방문객으로 인해 더 심각해진 숙소 부족 현상에 그만 불만이 터졌다. 평소에도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파리에 올림픽까지 열리니 이에 따라 벌어질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못마땅한 것이다.
이를 보면 이제는 아무리 올림픽이라고 해도 주민들의 평온한 삶에 방해가 된다면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상업화를 통한 외형 확장에만 치중한 올림픽 자체의 문제도 간과할 수는 없다. 게다가 유럽 주변에 두 개의 큰 전쟁까지 겹친 판이니 파리올림픽에는 더없는 악조건이다. 그렇더라도 올림픽은 올림픽이다. 유구한 올림픽의 정신은 살리되 시민 불편은 최소화하는 양립과 조화의 올림픽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