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년퇴직 후 한국·라트비아 민간 외교 역할 했죠”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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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금 부산대 명예교수

라트비아대 연구교수 등 5년 활동
한국어 전공 추가 개설 성과도
‘한국의 날’ 총괄 기획 한류 전파

국내 독보적 ‘발트 전문가’인 이상금 부산대 명예교수는 정년을 한 달 앞둔 2018년 2월 1일 동북유럽 라트비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라트비아 정부 장학생으로 선정돼 라트비아대학 연구교수로 가게 된 것이었다. 정년퇴직 이후 그의 새로운 삶의 무대는 동북유럽의 라트비아가 됐다.

“2018년 2월부터 2년간 라트비아 정부 장학금을 받아 ‘라트비아 현대문학 연구’를 수행하면서 라트비아대학에서 강의도 맡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2019년 6월에는 부산대학교와 라트비아대학이 라트비아 수도 리가 일원에서 공동 개최한 ‘라트비아 한국의 날’ 행사를 총괄 기획했다. 한국-발트국 국제심포지엄, 한국어 말하기 대회, 한국 전통음악과 춤 공연, 한국 영화 상영 등 행사를 통해 라트비아에 한류를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교수는 이어 2020년 2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라트비아대학 아시아학과 계약교수로 일했다. “아시아학과에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는 독립된 전공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원자가 더 많은 한국어는 독립 전공이 없었어요. 라트비아대학에 한국어학과 개설안을 제출해 취지와 목적, 배경 등을 전달했습니다.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과 협력해 지속적으로 개설 요청을 했고, 2023년 9월 한국어 전공이 마침내 추가 개설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6월 귀국 전까지 5년 넘게 라트비아에서 한국과 라트비아를 이어주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했다. 이 교수는 최근 라트비아의 국민 작가인 야니스 라이니스의 희곡 ‘황금말’ 한국어 번역본과 이 작품이 쓰였던 시대적 상황과 함께 라트비아의 역사, 문화 등을 정리한 〈황금말〉을 펴냈다. 1910년 대중에게 소개된 희곡 ‘황금말’은 외세의 점령과 지배 아래 자유와 독립을 꿈꿨던 라트비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은 이 교수가 5년 5개월 동안 라트비아에서의 학문적 성취와 경험을 담은 교양 학술서이다.

이 교수는 2004년 독일 부퍼탈대학의 연구교수로 갔을 때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을 처음 방문했다. 발트3국은 그해 5월 EU에 가입했다. “오랫동안 발트3국의 문화적 배경은 독일입니다. 발트 출신의 독일인들이 이룬 독일발트문학을 심화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어느새 발트3국과 인연을 맺은 지 20년이 되었네요. 발트3국은 독일, 스웨덴,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 끼여 끊임없이 침략과 수탈을 당하면서도 고유한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끝끝내 독립을 쟁취했다는 점에서 한국과 많이 닮았죠.”

이 교수는 그 뒤 발트3국을 국내에 최초로 알리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했다. 발트3국의 역사, 언어, 문화 등을 알리는 대중적 저서를 잇따라 냈다. 2011년 1월 부산대 EU센터가 주관한 ‘제1회 발트국 국제심포지엄’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 행사는 국내 최초로 열린 발트3국 관련 국제 심포지엄이었다. 2012년 10월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코리아 페스티벌’ 총책임자를 맡아 발트3국에 한류의 씨앗을 심었다. 이어 라트비아국립도서관에서 한국학 관련 도서전시회를 열었고 최근에는 ‘리가공대-부산공대’ 그리고 ‘리가의과대학병원-부산대학병원’간 업무 협약을 체결하는 역할도 해냈다.

더욱이 그는 〈황금말〉 외에도 3막 인생을 수놓는 저작을 준비 중이다. “올해 한글날 전에 〈어말아글〉이 발간될 예정입니다. 라트비아 학생들이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한글이 무엇인지를 5년간 조사한 결과를 담은 책이죠. 내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8차례 올랐던 에스토니아 작가 얀 크로스의 장편 소설 ‘차르의 미치광이’ 번역본도 낼 예정입니다.”

이 밖에 대하소설, 시집, 수필집도 준비하겠다는 이 교수는 3막 인생의 캐치프레이즈로 로버트 랑거의 시 제목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를 언급했다. 정년퇴직 후 한국과 발트3국을 더 활발하게 이어주며, 끊임없는 학문적 열정을 불태운 그의 삶의 궤적을 적확하게 보여준 문구였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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