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찾아낸 원도심의 다양한 매력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
7월 21일까지 ‘원도심 색채’전
중견 작가들 2024년 신작 눈길
부산이라는 도시의 출발, 원도심은 어떤 색으로 표현될까. 예민한 작가들이 포착한 부산 원도심의 색채와 이미지가 한자리에 모였다. 옛 부산은행 지하 금고를 개조한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이 7월 21일까지 ‘원도심의 색채’전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전통적 미술 영역인 회화, 조각 설치 외에도 사진, 현대무용, 건축가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참여해 원도심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모든 전시 작품을 오롯이 2024년 신작으로만 꾸몄고, 각자 영역에서 자리매김한 중견급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다른 말로, 기획자의 품이 많이 들어갔다는 의미이며 참여 작가들이 기꺼이 작품 비용을 줄여 참여했다는 뜻도 된다. 다들 이 전시에 진심이라는 말이다.
금고미술관 이창훈 큐레이터는 “원도심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한 실험으로, 이 전시를 준비했다”며 “참여 작가는 모두 부산 원도심에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원도심에 대한 고민을 오래 했고 누구보다 원도심의 매력과 관점을 제안해 주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호 금고에 걸린 여근섭 작가의 작품들로부터 시작된다. 100호, 120호의 큰 그림들로 영도 깡깡이마을의 한적한 바다와 낡은 배들이 묘사돼 있다. 강렬한 노랑으로 묘사된 장면은 청량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라 삶의 거친 흔적이 있는 영도 바다이다. 해운대, 광안리 바다로 대표되는 관광지 부산이 아니라 삶의 터전, 원도심 부산의 바다 모습이 고스란히 여 작가의 붓을 통해 살아난다.
2호 금고에서 3호 금고로 이어지는 방 중간에 조명을 받는 향로가 있다. 마치 역사 속 백제시대 유물 대향로처럼 거대한 이 작품은 김현엽 작가의 작품이다. 기계 부속품처럼 작은 조각들을 붙이고 작은 집들과 레고 속 블록, 작은 인간도 쌓여있다. 작가에게 원도심은 유물과 현대인의 복합 구조로 느껴진 듯하다.
3호 금고에는 거대한 2개의 로봇이 마주 보고 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은 이 작품은 제목도 재미있다. ‘연필과 지우개의 사랑싸움-관계의 연속성’이다. 송현철 작가는 바늘과 실, 숟가락과 젓가락, 빗자루와 쓰레받기 등 짝을 이루는 사물들을 주로 표현했다. 거대한 지우개 로봇과 연필 로봇은 서로를 향해 구애하는 것 같기도 하고, 대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원도심과 신도심 역시 서로 상호 보완할 수밖에 없는 부산의 두 축이기 때문에 작가는 이런 작품을 탄생시켰다.
4호 금고에서 만나는 대형 설치 작품은 조은필 작가의 작품이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부산 중앙동 40계단에서 프로젝트를 펼친 적 있는 조 작가는 2024년 금고미술관에서 다시 한번 대형 작품을 펼쳤다. 곡선형의 계단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고 식물에서 영감을 얻은 장식이 달려 있다. 뻗어나가는 식물처럼 원도심의 흐름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다. 이 작품은 관객과 교감하는 인터랙티브 아트이다.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조명이 들어오면서 설치작품이 다르게 보인다.
앞서는 전통 미술 영역 작가의 공간이라면 지하 금고 쪽은 조금 더 확장된 영역으로 넘어간다. 원도심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미용 봉사를 해 온 미용실 원장을 섭외해 금고미술관 도우미 어르신에게 미용 봉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김태훈 작가는 이 과정을 모두 사진에 담았다. 족자처럼 벽에 걸린 어르신 모습이 잔잔한 울림이 있다. 원도심을 지켜온 세대이기도 하며 지금도 여전히 그 원도심을 빛내주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전용주 작가의 단편 영상 원도심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다. 고등학생들이 이야기하는 원도심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 옆에도 영상이 있다. 부산의 현대무용단체인 판댄스시어터 춤꾼들이 부산진역 앞에서 다망구, 숨바꼭질, 오징어 달구지 등 추억 놀이를 몸짓으로 표현했다. 계속 삶을 이어가는 우리들은 어떤 관계성을 맺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은 옛 한국은행 금고를 지금의 금고미술관으로 변신시킨 4명의 건축사가 이번엔 예술가로 참가했다. 이들은 디자인그룹 ATZ라는 이름으로 산복도로를 건축가 시선으로 풀어냈다. 과거의 지형, 현대의 모습이 함께 있는 오브제는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소개하는 전시 투어와 토크 시간 참여도 받고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