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공연이 언제 잡힐지 걱정 좀 안 했으면…”
■ 재즈 거장들의 세 가지 소원 / 패노니카 드 쾨니그스워터
음악적 성공 가장 많이 꼽고
“전쟁 없어야 한다” 자주 나와
재즈 거장들 속살 잘 드러내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보세요.” “백만장자가 되는 것!… 당신이 진지하게 묻는 건지 몰랐네요. 바꾸겠습니다. 첫째는 정말로 연주할 줄 아는 것. 둘째는 필요한 사람으로 사는 것. 셋째는 일본에 가 보고 싶어요.” 미국의 재즈 더블베이스 연주자 더그 왓킨스가 대답했다. 세 가지 소원?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램프의 요정 지니가 갑자기 나타나 묻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돈, 명성, 건강, 행복….
저자인 패노니카는 세계 최고의 부를 축적했다고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의 상속자였다. 그보다는 인종차별이 옥죄고 재즈는 예술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절, 재즈 음악가들의 절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녀는 재즈 음악가들의 아지트였던 자신의 집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들을 촬영하며 소원을 물었다. 300명의 음악가가 ‘즉흥적으로’ 자신의 소원을 답했다. <재즈 거장들의 세 가지 소원>은 그걸 있는 그대로 담았다.
역시나 그들은 음악적 성공을 가장 많이 꼽았다. 내 악기를 좀 더 잘 연주하는 것, 코드를 착각하지 않는 것, 매일 연주할 수 있는 것, 언제 다음 공연이 잡힐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인생 내내 계속 음악을 연주하는 것…. 일본계 여성 재즈 음악가 토시코 아키요시는 “내 마음속 모든 것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소원이 이뤄지면, 두 번째, 세 번째 소원은 저절로 될 거예요”라고 현명한 대답을 했다. 많은 재즈 음악가들이 재즈가 순수한 예술로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기를 소원했다.
또 그들 중 다수가 델로니어스 멍크와 함께 공연하기를 소원했다. 멍크의 위상이 짐작이 된다. 멍크라고 하니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부산의 유명 재즈 클럽인 ‘몽크(MONK)’는 그를 기린 이름이다. 뭉크는 ‘절규’를 그린 노르웨이의 화가, 멍크는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표기가 정리된 듯하다. 몽크를 멍크라 부르니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불렀던 때처럼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많은 음악가가 인종적 편견이 없어지기를 소원했다. 패노니카가 어쩌다 멍크의 팔짱이라도 끼면 사람들은 그들이 걷는 인도로 침을 뱉었다. 패노니카는 첫 번째로 멍크에게 질문을 던졌다. 멍크의 소원은 음악적으로 성공하는 것,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당신처럼 못 말리는 친구를 얻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진정으로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 ‘지음(知音)’의 고사가 떠오른다.
이름난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소원을 “백인이 되는 것”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대목도 당혹스럽다. 아무리 백인 경관과 시비가 붙어 머리가 깨진 적이 있다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모든 사람을 같은 피부색으로 만들자. 그러면 모두가 그들 개인의 장점으로 평가받을 것이다”는 소원이 훨씬 듣기 좋다. 존 콜트레인의 소원이 “난 지금 진부하다. 고갈되지 않는 신선한 음악을 갖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력이 지금보다 세 배 강해지는 것”을 소원했다니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다.
더 이상은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소원도 자주 등장한다. 허비 맨은 “이 돌대가리들이 빌어먹을 폭탄으로 그만 좀 장난쳤으면 좋겠다”, 웨인 쇼터는 “설사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날 부르지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세계의 영구적인 평화, 여권이 필요 없는 세상을 꿈꿨다. 세 번째 소원으로 “세 가지 소원 더 들어주는 것”이란 재치 있는 대답도 있다. 소원이 “부인을 이해하는 것”이란 대답도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평범해서 더욱 특별하다. 패노니카가 가족 같은 재즈 음악인들을 찍어서 그렇다. 그녀의 장례식은 뉴욕의 한 재즈 교회에서 열렸다. 재즈 거장들이 패노니카를 위해 작곡한 곡이 24곡에 이른다고 한다. 남녀를 떠나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싶다. 오늘 밤에는 멍크의 ‘패노니카’를 들어야겠다. 그녀가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미리 생각도 해 보고…. 패노니카 드 쾨니그스워터 지음/게리 기딘스·나딘 드 쾨니그스워터 해설/황덕호 옮김/안목/336쪽/3만 6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