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고고학, ‘태안선’ 타고 소설 속 항해 시작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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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소설가 신작 해양소설
침몰선 유물 인양하는 스토리
‘3년간 서해안 돌며 취재 구상”

해양유물 탐사 대원이 태안 마도 해역에서 침몰한 배에 실린 도자기들을 살펴보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해양유물 탐사 대원이 태안 마도 해역에서 침몰한 배에 실린 도자기들을 살펴보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해양유물 탐사를 소재로 수중고고학이라는 낯선 세계로 독자들을 이끄는 이병순 소설가의 신작 해양소설 <태안선>이 최근 출간됐다. 이 소설가는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끌>과 장편소설 <죽림한풍을 찾아서>를 낸 중견 작가다. 이 소설가는 <죽림한풍을 찾아서>를 쓰기 위한 자료 조사 때문에 전국의 웬만한 박물관은 다 다녔고, 심지어 같은 박물관도 서너 번 씩 갔다고 했다. 그러다 태안선 이야기를 만났다.

인양된 침몰선이라면 중국 무역선인 신안선 정도만 겨우 알지, 태안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태안선이 인양된 계기는 어떤 인양 사례보다 극적이다. 2007년 충남 태안군 마도에서 한 어민이 조업을 하다 주꾸미가 청자를 악물고 있는 걸 발견하고 신고했다. 고려청자를 운반하다 1131년에 난파한 태안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어진 발굴 조사로 2만 5000여 점의 강진산 고려청자와 선체를 인양하게 된다. 우리나라 수중 문화유산의 4분의 1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라고 한다.

이때 활약한 이들이 이번 소설의 주인공인 해양유물 탐사 대원들이다. 이 소설가는 이 기막힌 태안선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발동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태안 앞바다는 지금까지 5척의 난파선이 발굴되면서 ‘바닷속 경주’로 불린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392년(태조 4년)부터 1455년(세조 1년)까지 60여 년에 걸쳐 200척이 태안 마도 앞바다의 험한 물살인 안흥량에서 침몰했다고 한다. 이 소설가가 “얼마나 많은 침몰선이 서해에 가라앉아 있을지 상상을 하자 바다를 찢어발겨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잠수를 배우지 못한 게 한스럽다”라고 말할 정도다.

<태안선>을 출간한 이병순 소설가가 취재 노트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태안선>을 출간한 이병순 소설가가 취재 노트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이 소설가는 물속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신 3년간 태안부터 시작해 백령도까지 서해를 돌았다. 바다에 가면 바다 냄새와 함께 싱싱한 표현이 하나씩 떠올랐다고 했다. <태안선>은 고고학과를 나와 해양유물전시관 수중발굴과에 근무하는 주인공 송기주를 비롯한 해양유물 탐사 대원들이 침몰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유물을 인양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실제 일어났던 발굴 보고서의 일정과 발굴 유물을 그대로 따라간다. 해양유물 탐사 대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충실한 자료조사와 탐문으로 다큐멘터리 같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마침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서울의 한성백제박물관에서 5월 19일까지 태안선 발굴 유물로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전시를 열어 소설과 현실이 겹쳐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설 속에는 ‘육상고고학은 오래전에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수중고고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나라 대학에는 왜 수중고고학과가 없는지 모르겠다. 해양대학교에 수중발굴학과가 있으면 딱이겠네’ 같은 해양에 관심을 촉구하는 대사들이 등장해 더 주목이 된다. 고고학과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같은 소설이라는 평가다. 바다 냄새가 물씬 나서 여름 휴가철에 읽으면 좋겠다. 이 소설가는 “박물관에서 조명을 받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는 옛 유물 한 점을 인양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것과 관련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는지 조금이라도 알아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태안선> 표지. <태안선>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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