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친족상도례' 대수술
가족은 현대인이 가장 기대고 싶은 최고·최후의 의지처로 꼽는 대상이다. 그만큼 조건 없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여긴다. 가족은 이처럼 불멸의 단단한 언덕처럼 믿고 의지하는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혹 큰 다툼이 벌어지면 보통 사람의 경우보다 그 후유증이 더하다. 가족 간 송사가 생기면 적대감이 오히려 남보다 더하다는 말이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고대 로마법에서 유래했다는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가족 간 다툼에 대해 국가의 개입 대신 자체 해결의 원칙을 제시한 법 개념이라고 한다. 가장의 가족 내 권위를 국가가 인정하고 이를 활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현대에도 수천 년 전의 해법이 잘 작동하기를 기대할 순 없다.
가족 간 다툼은 초기에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이 단계를 벗어나면 대체로 자체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게 되면 가족 관계는 거의 파탄 날 지경에 이른다. 예전처럼 법이 문지방을 넘지 않기를 기다리고 있다가는 가족 간 골만 더 깊어질 뿐이다. 차라리 빨리 법이 문지방을 넘어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게 갈등 관리에 더 낫다.
며칠 전 헌법재판소가 가족 간 재산 범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의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71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으로 이 조항은 적용이 중지됐다. 이제 아무리 가족이나 친족이라도 절도·사기·횡령·배임 등 자기의 재산에 가한 범죄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자식의 재산이니까, 동생의 재산이니까 내가 좀 맘대로 써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앞으로는 법적으로 통하지 않게 됐다. 그동안 제기된 많은 문제와 비판이 이제야 법적으로 일단락됐다.
친족상도례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개인 권리의 측면에서 보면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특히 가족 간 분쟁 원인의 대부분이 금전 문제로 인한 것임을 감안하면 더욱더 그렇다. 지나친 개인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부모나 친형제라고 해도 각자의 고유한 재산 영역은 그대로 존중돼야 마땅하다. 금전 문제라면 더욱 어정쩡한 봉합보다는 깔끔한 선 긋기로 미래의 분쟁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정 없고 메마른 느낌이 들더라도 개인화 시대인 지금은 가족이라고 해도 서로 넘보지 말아야 할 것은 넘보지 않는 게 관계 유지의 비결인 것 같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