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위험 낮추고 기후 변화 늦추는 '지구 건강 식단' 아세요?
[지구 건강 식단, 효과와 실천법]
인류와 지구 건강 함께 지키는 식단
암·심혈관·감염병 사망률 모두 감소
온실가스 배출 29% 줄이는 효과
채소·과일·통곡물·콩류·견과류 권장
적색육·달걀은 주 1회 정도로 제한
"인류와 지구, 함께 건강할 수 있다"
건강을 위협하는 먹거리와 식습관은 가깝고, 기후 변화의 암울한 전망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으면 내 건강을 지키고 지구에도 도움이 될까? 과학자들은 2019년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지구 건강 식단(Planetary Health Diet)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식단 기준에 부합한 사람이 조기 사망 위험이 낮았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구 건강 식단의 효과와 실천법을 소개한다.
■조기 사망 위험 30% 낮춘다
최근 미국 임상영양저널 온라인판에는 지구 건강 식단을 지키면 조기 사망 위험을 30%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지구 건강 식단은 최소한으로 가공된 다양한 식물성 식품을 중심으로 하되 적당한 육류와 유제품 섭취를 허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버드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미국 내 간호사 건강 연구 I·II와 건강 전문가 후속 연구에 등록한 20만 명 이상의 건강 데이터를 활용해 지구 건강 식단을 지킨 정도와 주요 질병으로 인한 조기 사망 가능성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이번 연구는 최대 34년간 추적 관찰한 데이터를 통해 지구 건강 식단의 영향을 직접 평가한 최초의 대규모 연구다. 참가자들은 연구 시작 당시 주요 만성 질환이 없었고 4년마다 식이 설문지를 작성했다. 연구팀은 15가지 식품군 섭취를 기준으로 지구 건강 식단 지수를 만들었다.
분석 결과 지구 건강 식단을 가장 잘 지킨 상위 10%는 하위 10%에 비해 조기 사망 위험이 30% 낮았다. 질환별로는 암으로 사망할 위험이 10% 낮았고, 심혈관 질환(14%), 폐 질환(47%), 알츠하이머와 기타 신경 퇴행성 질환(28%) 등으로 인한 사망 위험도 모두 낮았다. 지구 건강 식단과 가장 가까운 식습관을 가진 여성은 감염병으로 사망할 위험 또한 38% 더 낮았다.
지구 건강 식단은 토지 사용이 적고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식품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 식단을 잘 지킨 사람은 온실가스 배출 29% 감소, 농경지 사용 51% 감소, 비료 사용 21% 감소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더 적은 것으로 평가됐다.
연구를 이끈 하버드 보건대학원 월터 윌렛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과 지구의 건강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건강하게 먹는 것은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키며, 이는 결국 지구상 모든 사람의 건강과 복지에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지구 건강 식단은 장수 비결로 유명한 지중해 식단과도 비슷하다. 최근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건강한 미국 여성 2만 5000여 명을 2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지중해 식단을 잘 지키면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2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접시 절반을 채소와 과일로
2019년 16개국 보건, 농업, 정치, 환경 분야 과학자 37명으로 구성된 이트-랜싯(EAT-Lancet) 위원회가 지구 건강 식단을 제안했다. 식량 생산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한다. 위원회는 건강한 식사와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 시스템을 연결하는 식단으로 전환하면 지구를 보호하면서 연간 약 1100만 명의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성인 전체 사망자의 20% 안팎에 해당한다.
지구 건강 식단은 다양한 식물성 식품과 소량의 동물성 식품, 불포화지방을 함유한 식품을 포함하고 정제 곡류와 고도 가공식품, 첨가 당은 제한한다. 채소와 과일, 통곡물, 콩류, 견과류를 강조하는 점은 지중해 식단, 고혈압 예방 식단(DASH 식단) 등 대표적인 건강 식단과 겹친다.
하루 2500칼로리 섭취를 기준으로 권장량을 보면 채소(300g)와 과일(200g), 콩류(75g), 견과류(50g) 등 식물성 식품의 비중이 크다. 동물성 식품은 생선류(28g)만 추천 식품에 들어갔다. 소고기, 돼지고기 등 적색육(14g)은 제한 식품, 닭고기 등 가금류(29g)와 난류(13g)는 유제품(250g)과 함께 조건적 선택 식품으로 분류된다. 첨가 지방은 포화 지방(11.8g)보다 올리브오일 같은 불포화 지방(40g)으로 섭취한다. 나머지는 쌀, 밀 등 전곡류(232g), 감자 등 전분 채소(50g), 첨가 당(31g) 등이다.
실제 끼니에서는 한 접시의 절반은 채소와 과일로 채우고, 나머지 절반은 전곡류, 식물성 단백질, 불포화 식물성 기름과 적정량의 동물성 단백질로 구성하면 된다. 채소는 전분이 없는 종류를, 곡류는 현미, 보리 등 통곡물이나 통곡물로 만든 통밀빵 등을 선택한다.
고기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권장량 내에서도 우유, 치즈 같은 유제품은 하루 한 번, 적색육과 달걀은 일주일에 각각 한 번, 가금류나 생선은 일주일에 각각 두 번씩 먹을 수 있다. 가끔 고기나 생선을 허용하는 유연한 채식(플렉시테리언)에 가깝다.
윌터 월렛 교수는 "우리가 먹는 방식을 바꾸면 기후 변화 과정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인류의 건강을 위해 지구의 건강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둘 다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