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이제훈 “극한의 연기, 또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
3일 개봉… 북한군 규남 역
뛰고 구르고 헤엄치는 연기
“극 중 역할서 실제 내 모습 봐”
영화 ‘탈주’에서 배우 이제훈은 뛰고 또 달린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얼굴을 뒤덮어도 멈추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계속 내달린다. 목숨 건 탈주를 시작한 북한군 중사 규남의 얼굴이 스크린에 비치면 관객은 긴장감에 양 주먹을 꼭 쥐고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이렇게 힘든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며 웃었다.
오는 3일 개봉하는 영화는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부대에서 만기 제대를 앞둔 북한군 중사 규남의 탈주를 그린다. 규남은 끝없는 갈대밭과 깊은 늪, 일촉즉발 지뢰밭에 거침없이 들어가 자유를 향해 달린다. 이제훈은 모든 장면을 직접 뛰고 구르고 헤엄치며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소화했다. 그는 “한 장면 한 장면 온 마음을 써서 표현했다”며 “체력도 중요했기 때문에 매일 운동을 하면서 관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멈추거나 넘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규남을 표현하기 위해 식단 관리를 했다”면서 “공포를 느끼면서 달려야 하는 장면에선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로 달렸다”고 회상했다. “탄수화물을 거의 안 먹었어요. 풀숲을 달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많이 달려서 그런지 어느 순간 무릎이 안 굽혀지더라고요. 스스로에게 화가 났어요. 후유증인지 요즘엔 산에서 내려오거나 계단을 오래 내려오면 무릎이 안 굽혀질 때가 있더라고요.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규남을 쫓는 보위부 소좌 현상은 구교환이 연기했다. 이제훈과 구교환은 이 작품 출연 전 여러 자리에서 “함께 작품하고 싶은 배우”로 서로를 꼽았던 만큼 이 작품은 두 사람 만남 자체로 화제가 됐다. 구교환이 미제 립밤을 바르고 포마드 머리를 가지런히 넘길 땐 작품에 묘한 분위기가 더해져 긴장감을 높인다. 이제훈은 “구교환 씨와 함께 호흡을 맞춰보니 어떤 것을 씌워도 다 할 수 있는 배우란 걸 느꼈다”며 “이 작품을 보면 이 배우에게 더욱더 빠져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이어 “(구교환 씨와)이번에 함께 하게 돼 성공한 덕후가 된 기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작품에 삽입된 가수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는 규남이 꿈꾸는 자유와 주체적인 삶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이제훈은 규남의 모습에서 배우를 꿈꿨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봤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 (연기를) 모두 말렸지만, 난 배우가 정말 하고 싶었다”며 “불확실성이 컸지만, 꿈에 도전했고 그 삶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그런지 실패할지라도 도전할 수 있는 규남의 용기가 멋있었다”고 했다. “규남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각자에겐 꿈이 있고 목표가 있잖아요. 모두 속도는 다르지만, 꿈을 향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을 거란 삶의 믿음이 있어요. 저도 여전히 도전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2006년 단편영화 ‘진실 리트머스’로 데뷔한 이제훈은 어느덧 데뷔 20년을 앞두고 있다. 그는 2021년 콘텐츠 제작사 하드컷과 연예기획사 컴퍼니온을 설립해 활동 폭을 넓혔다. 같은 해 영화 ‘언프레임드’의 단편 ‘블루 해피니스’를 연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감독으로 초청받기도 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대중을 만나 온 그의 ‘열일’ 행보는 계속된다. 최근엔 안판석 PD의 드라마 ‘협상의 기술’ 촬영을 시작했고, 지역의 독립예술영화관을 소개하는 유튜브 콘텐츠도 선보이고 있다. 이제훈은 “매 작품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다”며 “평생 연기를 하는 게 내 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배우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연기를 통해 대중이 인생의 빛을 발견하고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할게요.(웃음)”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