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의 미래, 세계가 주목하는 전현선
21일까지 조현화랑 해운대점
‘두개의, 누워있는, 뿌리가…’전
생각·느낌, 회화적 언어로 표현
부산에만 100여 개가 넘는 갤러리가 있다. 부지런히 전시를 보고 작가를 만나며 기사를 쓰지만, 가끔 좋은 전시를 놓치기도 한다. 주말 끝나는 전시를 확인하다가 “아차! 이걸 놓칠 뻔했네”라고 크게 당황한 전시가 있다. 조현화랑 해운대점에서 21일까지 열리는 전현선 작가의 전시이다. ‘두 개의, 누워 있는, 뿌리가 드러난 세계’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 전시는 작가가 가진 시각적 언어의 힘에 잔잔한 메시지, 신선한 전시 구성까지 더해져 미술 애호가들은 꼭 봐야할 전시로 추천하고 싶다.
1989년생인 전현선 작가는 올해 9월 독일 갤러리 에스더 쉬퍼에서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와 함께 전시를 진행한다고 알려져 요즘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이다.
35년 역사를 지닌 독일 갤러리 에스더 쉬퍼는 필립 파레노, 우고 론디노네, 리암 길릭 등 세계적인 작가가 소속돼 있다. 2022년 서울에 지점을 낸 이후 세계에 알릴 한국 작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했고 올해 초 한국과 베를린에서 동시 개최한 한국 작가 단체전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전현선 작가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에스더 쉬퍼의 첫 한국인 전속 작가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전 작가를 소개하는 기사에는 ‘K아트의 미래’ ‘차세대 국가대표 미술인’이라는 수식어가 함께 붙는다.
이번 부산 전시로 인해 독일로 가기 전 전 작가의 회화적 매력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셈이다. 전 작가는 기하학적 형상 등을 수채로 캔버스에 얇게 쌓아 올리거나 입체로 표현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구체적인 형상은 있지만, 명확히 어떤 장면이나 어떤 사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그림이다. 구상과 추상이 자유롭게 섞였지만 작가만의 미학과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전 작가의 그림은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경험한 일을 회화적 언어로 전달하는 듯하다. 장면을 재현하기보다 상황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식이다.
전 작가는 “파악되지 못하고 판단이 유예된 대상은 그림에서 원뿔, 원기둥, 팔각형 같은 기하학적 도형으로 표현하죠. 확정적인 언어로 직접 말하는 것 보다,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더 정확하게 설명해준다고 믿어요”라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는 가로 1m, 세로 2m의 그림 10점을 전시장 중앙에 세웠다. 마치 10폭 병풍같은 형태이다. 벽에 걸려 감상되는 회화로 남지 않고, 공간,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회화이자 설치작품이 된 셈이다. 10미터에 이르는 10개의 캔버스는 고정된 한 곳에서 전체를 보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하나씩 떼서 보는 것도 어렵다. 관객은 그림을 보는 위치와 방식을 스스로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그림과 대화하게 만들었다.
병풍처럼 펼쳐진 10개의 대형 그림 외에도 벽에 걸린 회화도 있다. 작업과정과 작업실을 주로 표현한 작품으로, 본인이 늘 바라보는 대상과 공간을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물론 이 회화에도 어김없이 도형들이 등장한다.
고요한 듯 보이는 전시장에선 그림을 통해 작가와 관객의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전현선 작가의 전시는 그림이, 예술이 어떻게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