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버린 소나무 작가의 이유 있는 도전
‘송혜수 미술상’ 구명본 작가
금련산역갤러리서 신작 공개
돌가루를 기계로 깎아 표현
섬세하고 동적인 느낌 호평
지난 16일 오후 6시, 부산 수영구 금련산역갤러리는 시끌벅적했다. 근래 들어 부산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 중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린 듯했다. 올해 20회 송혜수 미술상을 받은 구명본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축하만큼이나 새로운 호기심이 집중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바로 40여 년 그림을 그린 구 작가가 붓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한 신작 작품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36번의 개인전, 그보다 휠씬 더 많은 단체전, 국제 아트페어 등 정말 많은 미술 전시와 행사에 참여했는데 이렇게 떨린 적이 없습니다. 어제 잠을 못 잘 정도였죠. 그림을 업으로 삼는 작가기에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읽고 적극적으로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큰 도전입니다.”
구 작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시작했다. 섬세한 붓터치, 특유의 맑은 색감으로 소나무를 수 십년 그린 구 작가는 전국 미술판에서 ‘소나무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구 작가는 지금까지 해 온 그림 방식을 완전히 버리기로 했다.
어느 순간 소나무를 그리는 작가들이 너무 많아졌고 심지어 구 작가의 화풍과 비슷한 작가들도 생겼다. 원조를 고집하기보다 자신이 앞서서 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도자에서 사용하는 흙을 올려 그림을 그리려다가 균열이 생겨 그림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수 십번의 실패 끝에 흰색의 돌가루를 발견하고 물감 대신 돌가루로 선택하게 된다.
이번 전시회에선 붓 터치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 흰색의 돌가루를 바르고 말린 후 치과에서 이를 갈 때 쓰는 기계(글라인더)로 마른 돌가루를 건드려 소나무 형상을 표현했다. 붓 대신 치과 기계가 화가의 도구가 된 것이다. 이전과 다르게 바탕에 흰색의 불규칙한 여백을 두고 까치를 넣는 등 구 작가의 소나무 그림은 완전히 달라졌다. 섬세하고 세밀하면서 까치 움직임 덕분에 동적인 느낌까지 더해졌다. 무엇보다 구 작가는 자기만 할 수 있는 도구와 표현 방법을 얻었다는 점에서 가장 만족한다고 말했다.
전시에 앞서 도록으로 구 작가의 신작을 미리 본 전국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러 오겠다거나 작품을 몇 점 보내줄 수 있냐는 요청이 이어졌다. 무모한 도전이라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일단 반응이 좋아 성공적인 시작이라고 격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구명본 작가의 수상 기념전은 21일까지 열리며, 24~29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부산갤러리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