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제왕적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할까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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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 이익주

창비 '한국사상선' 첫 번째 사상가
왕의 절대 권한 대신 신권 강화 주장
대통령-의원내각제 담론과도 닮아

한국사상선 1 <정도전> 표지. 한국사상선 1 <정도전> 표지.

어떻게 사유(思惟)할 것인가. 늘어나는 가계 부채를 생각하면, 사유 따위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호강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름 아니다. 경제적 위기를 비롯해 다양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유할(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에 출판사 창비는 창립 60주년을 준비하며 국내 사상적 거장들의 사유와 철학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시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정도전>은 창비의 새로운 시도 ‘창비 한국사상선’의 첫 번째 책이다. 전 30권 중 <정도전>을 비롯한 10권이 이번에 출간됐다. 매년 10권씩 출간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2026년에 전 30권을 완간하겠다는 목표다.

창비는 이번 기획에서 기존 사상가의 범주에서 제외됐던 군주·여성·문인·정치인·종교인을 포함하고, 20세기 후반의 최근 인물까지 조망함으로써 ‘정도전부터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상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했다. 책은 30권이지만 수록될 사상의 거인은 총 59명이다. 2권 <세종·정조>처럼 공통점을 가진 여러 인물을 한 권에 함께 담기도 했다. 세종·정조는 ‘혁신의 군주’라는 점에서 닮았다.

출간 방식도 눈에 띈다. 1~10권을 먼저 출간한 것이 아니라 1~5, 16~20권을 먼저 냈다. 선집 전체를 ‘전기편’과 ‘후기편’으로 나누고, 전기편 1~15권은 19세기 이전의 사상가를, 후기편 16~30권은 20세기 사상가를 주로 배치했다. 매년 전·후기 각각 5권씩을 출간한다는 방침이다.

<정도전>으로 돌아가자. ‘사상선’의 첫 자리에 정도전을 앉힌 창비의 취향에 무릎을 쳤다. 같은 유학자이면서도 한국 유교사상의 국가대표라 할 수 있는 한국조폐공사 소속 이황과 이이(각각 1000원 권과 5000원 권의 모델)를 제꼈다. 참고로 이황은 5권의 수록 인물이다. 물론, 책 순서가 꼭 해당 인물의 사상적 위대함을 가리는 기준은 아니다. 왠지 시대순일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상가 중 정도전만큼 동시대를 앞서간 혁명가도 드물다. 정도전은 맹자의 혁명사상과 성리학의 민본사상을 틀어쥐고 조선을 개국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정치사상가였다. 무엇보다 조선 왕조의 설계자이면서도, 왕권보다 신권을 강조했다. 왕조 국가에서 왕은 가장 중요한 존재이지만, 세습되는 왕의 자질이 항상 우수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정도전의 고민이었다. 이에 왕은 상징적으로만 통치하고, 능력이 검증된 뛰어난 신하가 재상이 되어 구체적인 국가 경영을 담당하는 것이 최상이라 생각했다. 왕 역시 신하에 대한 임명권을 가짐으로써 권력의 균형을 유지한다.

정도전의 사상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이방원에 의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꺾였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조선 왕조 500년 내내 영향을 끼쳤다. 조선의 역사는 왕권-신권 갈등 반복의 역사였다. 왕이 주인공일 경우가 많은 사극에선 왕권을 위협하는 신하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정도전도 그런 억울함이 없지 않다), 사실 무엇이 옳은지 단칼에 베어 말하기는 어렵다.

정도전의 고민은 현 시대 한국의 정치적 담론과도 연결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물론 세습은 아니지만)에 대한 우려와 그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된 의원내각제 도입에 대한 논쟁과 닮았다. 이 글의 처음에도 말했듯, 정도전의 사상이, 그리고 창비가 기획한 거인들의 사상이,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획의 완수를 기원한다. 이익주 편저/창비/280쪽/2만 1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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