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나이키’ 고무신을 신어 보셨나요?
임시수도기념관 ‘고무신’전
부산 대표 산업 자리매김한
고무신이 갖는 의미 재조명
부산시 임시수도기념관이 11월 30일까지 기념관 전시실에서 특별기획전 ‘고무신’을 열고 있다. 임시수도기념관에서 무슨 고무신 전시냐 싶겠지만, 고무신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부산 지역에서 고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신발’이라고 정의할 정도로 부산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임시수도기념관 측은 “한국전쟁 이후 부산의 대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던 고무신 산업의 발전사와 한국의 근·현대사 속 고무신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조명하고자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고무신의 도입과 국산화 △부산 고무신 시대 △일상 속의 고무신 등 총 3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우리나라에 고무신이 등장한 것은 1910년대 말 일본에서 수입되면서부터였다. 1919년 조선에서 자체 생산이 시작되었고, 1921년부터 ‘한국형 고무신’이 나왔다. 한국형 고무신은 폭이 넓고 굽이 낮으며, 신발 덮개가 반만 있는 형태이다. 남자 고무신은 짚신을 본떴고, 여자 것은 당혜(울이 깊고 앞코가 작은 가죽신)를 참고해 만들었다. 짚신보다 내구성과 방수성이 뛰어난 고무신은 계층을 막론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대유행했다. 부산에서는 1923년 일영고무공업소를 시작으로 삼화호모(광복 후인 1946년 삼화고무로 변경해 정부가 관리), 보생고무공업소 등이 설립되었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고무신은 국민 신발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그 배경에는 삼화고무·보생고무·국제화학·태화고무·대양고무·동양고무·진양화학 등 대부분 부산진구에 자리 잡은 부산의 고무신 기업들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고무신을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발전시킨 주역으로 수많은 여공을 꼽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시골이나 인근 지역에서 많은 여성들이 부산으로 들어왔고, 이들은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동구 범일동 안창마을 같은 공장 주변 마을에 자리 잡으며 생활했다.
고무신 산업은 1960년대 주요 수출산업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1970년대 이후 운동화가 대중화되면서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부산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고무신 기업 관련 유물 및 사진, 영상자료를 볼 수 있다. 1950~60년대 고무신과 함께한 부산시민들의 일상을 기록한 부산 1세대 사진작가인 정인성과 그의 아들인 정영모 사진작가의 작품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동진숙 임시수도기념관장은 “한국의 근·현대사 속 부산 고무신의 경제사적 가치와 위상을 살펴보고, 고무신을 신고 뛰놀았던 추억과 만나는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