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떠난 ‘끓는 바다’, 오징어·고등어도 떠날 채비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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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온에 ‘피시플레이션’ 오나

2100년 연안 수온 4도 높아질 듯
연근해 수산물 지도 예고된 급변
도루묵·명태 생산량 0 수렴 이어
회유성 어종 꾸준히 북상하는 중
상업성 떨어지는 열대어종 급증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고수온은 ‘정해진 미래’다. 전 세계가 탄소 배출을 극단적으로 낮추고 친환경 정책을 펼치더라도 2050년 우리나라 앞바다의 평균 수온은 1도 가까이 상승할 전망이다. 단 1도의 나비 효과는 상당하다. 국민 생선 고등어, 멸치의 서식지가 바뀌고 열대어가 출몰하는 등 국내 수산 자원이 뒤바뀔 수 있다. 잦은 양식장 폐사, 어획량 감소로 물가까지 치솟으며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38년 뒤 20도 돌파 ‘악화일로’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 수온은 오는 2050년 최대 19.41도까지 오른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안 평균 수온은 18.09도였다. 재생 에너지 기술 발달로 화석 연료 사용이 최소화하는 ‘저탄소 시나리오’를 보더라도 2050년 수온은 19도를 넘어선다. 연료 사용량이 많은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수온은 2062년 20도를 넘으며, 2100년에는 22.07도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금보다 약 4도 치솟는 셈이다.

이미 50년 전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연안 수온은 크게 오른 상태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화석 연료 사용 증가 탓이다. 1970년 국내 연안 평균 수온은 16.04도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 들어 17도를 웃돌았고 2021년 처음으로 18도를 넘어섰다. 고수온 현상은 탄소 배출 증가에 따라 전 세계에서 발생했지만, 특히 국내 앞바다에 두드러진다. 열을 품은 채 저위도에서 들어오는 대마 난류 유입이 늘고, 북태평양 고기압 확장으로 바닷물에 가해지는 복사열도 강해진 탓이다.

■어장 지도 바뀐다…대중성 어종 이탈

국내 수산업계는 오랜 기간 고수온에 시달려 왔다. 어패류 폐사 등을 겪은 양식 어가뿐 아니라 선망·유통업계도 들쭉날쭉 어획량에 몸서리친다.

고수온 영향에 취약한 건 통상 ‘회유성 어종’이다. 회유성 어종은 먹이 활동이나 산란 등을 이유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어종이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수온을 찾아 적극 이동하는데,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 범위를 벗어나면 국내 생산량이 뚝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회유성 어종인 오징어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20만~25만t의 생산량을 기록했지만, 지난해는 2만 3000여t에 불과했다. 1970년대 동해에서 주로 잡히던 꽁치, 명태, 도루묵도 자취를 감췄다. 명태는 1970년 연근해에서 1만 3418t이 생산됐지만 지난해에는 생산량 집계 자체도 되지 않았다. 꽁치와 도루묵도 같은 기간 2만 5036t에서 256t, 1만 6110t에서 611t으로 내려앉았다.

반면 파랑돔, 연무자리돔 등 국내에서 못 보던 열대 어종 출몰이 급격히 늘었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울릉도 연안에서 발견한 131종 중 열대·아열대성 어류가 절반 이상(58.5%)인 것으로 드러났다. 열대 어종은 소비자 선호도가 높지 않을뿐더러 상업적으로 활용할 만큼 다량으로 잡히지도 않는다.

■국민 생선도 북상…대비 태세 시급

소비량이 높은 고등어를 비롯해, 삼치, 멸치, 방어 등도 회유성 어종이라 적합한 수온을 찾아 서식지를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수과원 관계자는 “어종의 서식지 변화는 해류와 수온, 해양오염 등 많은 변수가 얽혀 있다”면서도 “이들 어종은 장기적으로 시원한 수온을 찾아 동해를 떠나 오호츠크해 방향으로 분산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남해에서 주로 잡히던 방어는 최근 동해에서 어획량이 크게 늘었다. 1990년 방어 어획량 중 동해 비중은 21.7%에 불과했으나 2022년 기준 46%까지 치솟았다. 어업 현장에서는 고등어도 산란 시기와 이동 경로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는 말이 나온다. 대형선망수협의 한 관계자는 “고등어는 주로 제주도 근처에서 산란하고 이동하지만 최근에는 서해 등 다른 지역에서 더 오래 머무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어종이 고수온으로 서식지나 산란, 회유 시기가 변하면 수산물 가격도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고수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상 수온 발생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예측하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수과원은 2025년까지 인공지능(AI) 딥러닝 기법 등을 활용한 예측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를 토대로 주요 연근해 어종의 서식지 변화 흐름을 읽어 어민에게 제공하고, 관련 어법이나 스마트 양식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한 수산업계 관계자는 “국민이 선호하던 생선이 사라지면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전쟁 등 대외 변수에 가격이 출렁이게 된다”면서 “정부는 고수온 현상을 가정해 총허용어획량(TAC)을 조절하고 수산물 수입국 다각화, 고수온 내성 종 개발 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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