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변하는 그녀의 바다, 거기엔 무엇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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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광화랑 24일까지 전미경 전
바다를 탁월하게 그리는 작가
풍경이 아니라 심연의 바다 표현

전미경 ‘서 있는 바다’. 미광화랑 제공 전미경 ‘서 있는 바다’. 미광화랑 제공

“부산 살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매일 볼 수 있으니…”

부산을 찾은 외지인을 만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바닷가 쪽에 숙소를 잡은 경우가 많고 만남의 장소도 대체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이다 보니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대한 이야기가 인사를 대신한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바닷가로 뛰어들 만큼 바다 가까이 살았던 나는 사실 바다가 마냥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태풍 시즌이면 온 동네가 긴장하며 바다를 쳐다봐야 했고, 피해를 당한 집들이 꽤 많았다. 초등 시절 단짝은 태풍에 이은 해일 때문에 집안 살림살이를 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광화랑에서 전시 중인 전미경의 바다 그림을 보며 어린 시절의 무서웠던 바다가 생각났다. 전미경은 오랫동안 파도의 너울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표현하기 힘든 파도와 바다, 윤슬을 사실적으로 그려 ‘바다의 작가’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바다를 그리는 작가는 많아도 전미경만큼 그려내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바다 표현에 있어서는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다를 똑같이 그렸다는 말은 칭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바다는 현실의 바다가 아닙니다. 실제로 바다를 보며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저에게 바다는 깊은 심연입니다. 심리적인 불안, 내상일 수도 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회피의 기제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의 설명처럼, 전미경의 바다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이다. 바다를 탁월하게 묘사했지만, 작품을 자세히 보면 그녀의 바다는 풍경화 바다와 무척 다르다.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녀의 예전 작업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 작가는 1990년대까지 부정적인 현실, 모순적인 사회와 부조리를 그림으로 비판했다. 민중미술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다. 그러다가 2000년에 그려진 ‘자갈치의 새벽’이라는 작품이 바다 그림으로 빠지게 되는 연결점이 된다. 바다 한가운데 배가 떠 있고 화면 전면에 두 남자가 고개를 떨구고 있는 작품으로, 한국은 구제금융위기,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겪던 시기였다. 그림에서 인물의 표정은 볼 수 없지만 바다를 통해 인물의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처연한 바다는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전미경 ‘등뼈’. 미광화랑 제공 전미경 ‘등뼈’. 미광화랑 제공

전미경 ‘블루 마운틴’. 미광화랑 제공 전미경 ‘블루 마운틴’. 미광화랑 제공

그 그림을 계기로 전미경은 바다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물 위에 빛나는 아름다운 윤슬을 그리거나 잔잔한 바다도 그렸지만, 작가는 무심하게 반복되는 파도의 형상, 검푸른 바다, 추상회화같이 몽환적인 바닷속을 그렸다. 일부러 원근감이 없는 정면의 바다를 그려서 풍경이 아니라 내면의 심리적인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였다. 사람들의 좌절, 슬픔을 드러내거나 묵묵히 받아주는 바다이다.

부산에서 줄곧 그림을 그리며 어느덧 5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작가는 뛰어난 실력에 비해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6개월이 걸릴 만큼 작품에 많은 시간을 쓰고 100호 이상의 대작들을 주로 그리다 보니 전시를 자주 열 수도 없다. 비엔날레 혹은 대형 미술관급 작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나지만, 작가는 정작 그림 그리는 것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전미경 ‘그 바다’. 미광화랑 제공 전미경 ‘그 바다’. 미광화랑 제공

전미경 ‘무제’. 미광화랑 제공 전미경 ‘무제’. 미광화랑 제공

미광화랑 김기봉 대표는 “갤러리가 광안리에 있다 보니 여름에는 외지에서 온 관람객들이 많다. 이들에게 바다를 그리는 전미경 작가 그림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여름에 전시를 맞추기 위해 굉장히 오래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미경 작가의 바다는 매일 마주하고 버텨내야 하는 세상과 닮았다. 전미경 개인전은 24일까지 미광화랑에서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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