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받고 입찰 예정가 흘려… 공공병원 비리 적발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입찰팀장
의료품 판매업체 대표 등 구속
외제차 리스료·술값 대납 대가
28억 원 규모 납품 계약 따내
공공의 예산이 투입된 공공병원에서 억대 외제차량이 뇌물로 오가는 심각한 입찰 비리가 발생해 파장이 일고 있다. 병원 직원이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고 입찰 예정가를 미리 알려준 뒤 쉽게 낙찰 받도록 도운 것인데, 공공병원의 허술한 입찰 과정에 대한 점검과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원자력병원 전 입찰총괄팀장인 40대 A 씨와 의료 물품 판매업체 대표 40대 B 씨를 뇌물수수와 입찰방해 혐의로 구속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경찰은 B 씨와 공모한 납품업자 등 7명은 입찰을 방해한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술자리를 하며 알고 지낸 B 씨에게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 의료 물품을 납품할 수 있게 돕는 대가로 시가 3억 원에 육박하는 고급 외제차를 받은 뒤 2년 6개월 동안 운행한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B 씨에게 골프장 이용료, 술값 등을 내게 한 혐의도 받는다.
B 씨 업체가 A 씨 대신 대납한 외제차 리스료는 월 391만 원씩 1억 1700만 원 정도다. 2021년부터 대납한 골프장 이용료와 술값 등을 포함하면 확인된 금액만 총 1억 2000만 원대다. A 씨는 특혜를 주는 대가로 외제차를 먼저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고, 경찰은 A 씨가 더 많은 금품을 받았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뇌물 규모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B 씨에게 입찰 예정가를 알려주고, B 씨는 다른 업체들을 동원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B 씨는 입찰 과정에서 6개 업체가 들러리 역할을 하도록 조직적으로 담합했고, 본인 업체가 입찰 예정가에 가장 근접한 금액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의료 물품을 연이어 낙찰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 씨가 수의계약에서 특혜를 받도록 B 씨를 도운 정황도 포착했다. 이러한 수법으로 업체가 챙긴 납품 규모만 28억 원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기소 전 추징보전’ 절차를 거쳐 술값과 골프장 이용료 등 A 씨가 받은 뇌물을 환수할 예정이다. 입찰을 방해한 업체들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 동안 입찰 참가 자격을 박탈할 계획이다.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 6월 A 씨가 뇌물을 받은 정황을 포착해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A 씨에게 대기 발령 조치를 내렸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아직 경찰 수사 결과가 통보되지 않아 정확한 범행 과정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는 입장이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관계자는 “철저히 개인의 일탈로 이 같은 담합은 전례가 없었다. 공공기관인만큼 일상감사, 특별감사, 국정감사를 모두 거쳐 철저한 입찰을 진행하고 있지만 개인의 계획된 일탈을 막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구매팀 직원의 잦은 인사 이동이나 일상감사, 추가 감사위원회 설치 등 다각도로 입찰 담합을 예방할 방안을 현재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수천억 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된 공공병원에서 이 같은 입찰 비리가 발생한 데 대해 사안을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다. 부산경찰청 형사기동2팀 이승주 팀장은 “공공병원 등 의료계 리베이트 관행과 입찰 담합에 대한 첩보를 계속해서 수집할 방침”이라며 “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신고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