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씹어 먹기 ‘오도독’] BTS 보유국의 명과 암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넷플릭스 다큐 ‘팝스타 아카데미’

다국적 소녀들 걸그룹 데뷔기
아이돌 무한경쟁 단면 보여줘

넷플릭스 '팝스타 아카데미: KATSEYE'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팝스타 아카데미: KATSEYE'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BTS(방탄소년단)가 가요계에서 갖는 위상은 엄청나다. 2017년 빌보드 뮤직어워드 ‘Top Social Artist’ 상 수상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에 K팝의 저력을 보여줬다. 2020년에는 빌보드 Hot 100과 Hot 200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21세기 비틀즈’라는 찬사를 받았다. 2021년 국제음반산업협회는 전 세계 음악 시장 매출 1위가 BTS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대기업’이다.

여기에 제2의 BTS를 꿈꾸는 소녀들이 있다. 세계적인 ‘K팝 걸그룹’이 되겠다는 꿈 하나로 미국, 스위스, 스페인 등에서 모인 이들이다. 12만 명의 지원자를 뚫고 선발된 20명의 연습생들은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가 되기 위해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제공 중인 ‘팝스타 아카데미: KATSEYE’는 BTS를 키운 하이브와 래퍼 스눕독 등이 소속된 게펜 레코드가 협업한 ‘글로벌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를 다룬 8부작 다큐멘터리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연습생들이 1년 이상의 훈련 과정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거쳐 가요계에 데뷔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지난달 21일 첫 공개 이후 SNS를 중심으로 인기몰이 중인 작품이다.

사실 걸그룹 육성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낯선 포맷이 아니다. 그룹 트와이스의 데뷔기를 다룬 ‘식스틴’, 아이오아이의 데뷔를 다룬 ‘프로듀스 101’ 등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외국인 제작진과 외국인 출연자가 주로 참여한 K팝 걸그룹 육성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다른 프로그램과 차이를 보인다.

이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K팝 종주국’의 위상은 반갑다. 다양한 국적·인종의 연습생들은 수업이 끝날 때마다 배꼽인사를 한다. 일명 ‘손’으로 불리는 BTS 안무가 손성득 총괄 크리에이터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수많은 외국인 앞에서 한국어로 의견을 제시한다. 연습생들이 한국계 멤버에게 보내는 은근한 부러움도 국내 시청자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다.

하지만 좋은 점만 부각되는 건 아니다. 한국형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연습생들을 경쟁의 한가운데로 몰아넣는다. “소혜야 가수가 하고 싶어?”(‘프로듀스 101’ 중) 수준의 압박은 없지만, 경쟁이 장기화되면서 연습생의 몸과 마음도 지쳐간다. 경쟁 시스템에 ‘현타’를 느낀 한 멤버는 “자신을 지키겠다”며 프로그램 하차를 선언한다. K팝을 좋아해 연습생이 됐지만, 탈락과 생존의 기로에 놓이자 흥미를 잃은 것. 경쟁에 지친 연습생의 눈물은 치열한 센터 대결, 반목, 악마의 편집 등 무한경쟁이 익숙한 우리나라 시청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프로그램은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더 이상 팬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스타를 좋아하지 않는다. 제작진들은 성장 이야기에 집중하고, 그룹은 결성 전부터 큰 인기를 끈다. 각국에서 모인 매력 있는 연습생들을 보며 나만의 ‘최애’를 찾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다.

프로그램의 막바지, 최종 미션을 앞둔 연습생들에게 보컬트레이너 GABE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여기서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야. 이 경쟁 너머에도 삶이 있어.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지 마.” 그의 말은 취업 준비와 각종 경쟁에 허덕이며 실패를 자기 탓으로만 돌리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듣고 싶어 할 말이기도 하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