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을 전하는 달항아리, 빌 게이츠도 반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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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욱, 4년 만의 부산 전시
28일까지 소울아트스페이스
인생사 담은 빙렬 표현 인상적


최영욱 작가 전시 전경.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최영욱 작가 전시 전경.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최영욱 작가 전시 전경.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최영욱 작가 전시 전경.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고미술품 컬렉터와 애호가 중 많은 이들이 달항아리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미학에 누구보다 예민한 이들이 왜 무늬나 색깔이 거의 없는 소박한 도자기에 반하게 되는 걸까.

최영욱 작가는 원래 단색조의 화면에 산수풍경의 운치 있는 회화를 주로 그렸다. 2005년 우연히 마주한 달항아리에 빠지며 이후 최 작가는 줄곧 달항아리만 그리고 있다. 그의 화폭에는 달항아리만 오롯이 등장한다. 작가에겐 큰 모험일 수도 있는 선택이지만, 작가는 필연처럼 그 길을 선택한 듯하다.

작가 스스로 “달항아리는 일체 기교와 허식을 버리고 자연스러운 곡선과 리듬감, 모두 감싸안는 포용력, 잡다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이 있다. 모든 걸 가지려는 현대인에게 잠시 멈출 수 있는 여백을 선물한다”라고 설명한다.

달항아리의 미학이 제대로 표현된 그의 그림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최영욱이라는 이름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통하는 작가가 되었다. 국내 기관, 미술관뿐만 아니라 미국 시애틀의 빌 게이츠 재단, 스페인 왕실, 룩셈부르크 왕실에 소장되는 등 외국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빌 게이츠가 직접 최영욱 그림을 선택했고 찬사를 남기며 최영욱은 빌 게이츠가 선택한 작가라는 별명으로 국내외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28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최영욱 개인전 ‘카르마:All is Well’은 최영욱 특유의 달항아리 매력이 오롯이 살아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부산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5번의 개인전을 연 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자리이다. 그동안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국내외 여러 갤러리에서 전시했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이번 부산 전시를 위해 29점의 신작을 내놓았다.

작가는 여전히 달항아리를 그리지만, 회화의 변주를 추구했다. 비디오를 활용하거나 공간 설치를 달리하고, NFT 실험을 병행하는 등 작품의 영역을 넓혀왔다.

많은 사람들은 작가의 정교한 묘사에 놀라지만, 사실 작가는 이미지 묘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최 작가는 “나는 달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이 같은 의도는 달항아리 그림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빙렬’이라는 용어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도자기 표면에 무수히 그려진 잔금 혹은 무늬를 빙렬이라고 부른다. 빙렬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생긴 흔적, 즉 노화된 피부 같은 것인데 실제로는 삶 자체 또는 우리네 인생사와 결부돼 있다. 작가는 달항아리 위에 빙렬을 그으면서 오랜 세월 만났다가 헤어지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삶의 드라마를 나타냈다. 작고 가느다란 붓과 색연필로 일일이 빙렬을 그으며 삶의 지평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최영욱 ‘카르마’.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최영욱 ‘카르마’.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최영욱 작가 전시 전경.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최영욱 작가 전시 전경.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일일이 세필로 빙렬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작가의 하루는 긋는 것으로 시작해 긋는 것으로 끝낸다고 말할 정도이다. 수행 같은 이 작업이 고되지 않냐는 질문에 작가는 오히려 즐겁다고 답한다. 힘든 작업을 버틸 힘은 몰입이 주는 성취감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불만족스러운 삶 속에서 정말로 견딜 수 없는 아이러니는 단조롭고 고된 일을 벗어던지기 위해 일로부터 즐거움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란다. 작가는 일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단조로운 일을 반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신작에선 중앙에 달항아리만 그렸던 것에서 벗어나 항아리 속 산수화로 배경을 채운 후 한쪽에 달항아리 한 점을 덩그러니 그리거나 중앙이 아닌 하단에 달항아리를 배치하기도 했다. 대형 캔버스에 항아리 실루엣은 완전히 지우고 표면 빙렬로만 가득 채운 작품도 있다. 이전보다 단순해진 작품은 캔버스 밖 하얀 벽면까지 확장되는 느낌이며 훨씬 깊어진 인상이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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