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시신 발견에 뒤집힌 이스라엘 시위대 “당장 휴전하라”
텔아비브 등지 수십만 명 집결
“네타냐후 휴전 불발 책임져야”
국방장관 등 관료도 비판 가세
11개월 맞은 가자전쟁 변곡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끌려갔던 이스라엘 인질 6명이 가자지구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자 이스라엘이 들끓고 있다.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인질 석방과 즉각 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최대 규모의 노조도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휴전에 미온적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 중이다.
이스라엘 정부 내에서도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휴전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 수치”라고 반발하는 등 갈등이 격화되어 이번 사태로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자전쟁이 분기점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BBC 방송과 미국 CNN은 1일(현지시간) “수도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등 이스라엘 주요 도시에서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인질·실종자가족포럼은 CNN에 이스라엘 전역에서 적어도 70만 명이 시위에 나섰으며 텔아비브에서만 55만명이 참여했다고 밝혔고, 워싱턴포스트(WP)도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고 언급했다.
시위대는 텔아비브 주요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석방과 휴전 협상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며 그의 대처를 비판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사임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일부 시위대는 네타냐후 총리를 겨냥해 ‘당신 책임이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네타냐후 총리의 가면을 쓴 사람을 둘러싸고 “그들(인질)이 살아있기 바란다”고 외치는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하마스에 잡혀간 인질의 가족들은 “휴전 협상이 지연되면서 인질 사망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관심이 있고 공감 능력은 없다”며 비판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시위대가 총리실을 에워쌌다. 한 시위대는 BBC에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었다”며 “사람들이 이제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깨달았고, 오늘 밤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회원 수 80만 명의 최대 노동운동 단체인 히스타드루트(이스라엘 노동자총연맹)는 휴전 협상을 압박하기 위해 2일 하루 총파업을 선언했다. 아르논 바르-다비드 위원장은 “우리는 협상 대신 시신만 돌려받고 있다”며 “협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심이 들끓는 와중에 이스라엘 정부 내에서도 내부 갈등도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CNN에 따르면 갈란트 장관은 내각회의에서 “나는 부상자를 홀로 남겨두지 않는다고 배웠다. 이건 도덕적 수치”라고 비난했다.
반면,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인질 석방을 위한 총파업에 대해 “하마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법무부에 긴급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없다.
이스라엘 대도시마다 이어진 전례 없는 규모의 시위가 가자전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이번 시위가 휴전과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고 네타냐후 정권을 전복하고 새로운 선거를 요구하는 운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디언은 특히 히스타드루트의 움직임에도 주목했다. 히스타드루트는 지난해 네타냐후 총리가 반기를 들었던 갈란트 장관을 해임하려 했을 때도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결국 목적을 달성한 바 있다.
텔레그래프도 이번 사태가 휴전 협상은 물론 네타냐후 연립 정부의 전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텔레그래프는 “이번 비극이 어떤 면에서는 1972년 발생한 뮌헨 올림픽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며 “향후 수년간 이스라엘에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텔레그래프는 네타냐후 총리는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가 정치적 생명 연장을 기대고 있는 연정은 취약하다며 갈란트 장관이 사임하거나 시위가 더 격화된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고 짚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