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오빠’ 남진, 스크린으로 만난다
4일 개봉 다큐 영화 ‘오빠, 남진’
‘님과 함께’ 등 히트곡·인생 담겨
“나의 인생곡은 ‘빈잔’과 ‘둥지’”
“소녀였던 10대 팬들이 어느덧 70대가 됐습니다. 그들 앞에선 저도 영원한 ‘오빠’가 됩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남진(79·김남진)의 말이다.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해 21세기에도 ‘둥지’라는 히트곡을 낸 남진이 이번엔 다큐멘터리 영화로 대중을 찾는다. 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빠, 남진’에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남진은 “내 이야기로 영화를 내는 건 처음”이라며 “60년 전 내 모습이 풋사과처럼 귀엽더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영화에는 남진의 노래와 인생이 담겼다. 그의 히트곡 ‘님과 함께’와 ‘빈잔’ ‘울려고 내가 왔나’ ‘모르리’ 등을 들려주면서 그의 인생 역정을 풀어낸다. 덕분에 영화에선 베트남 전쟁 참전과 70년대 퇴폐 풍조 추방 운동, 80년대 억압된 사회 분위기 등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그의 인생사를 함께 볼 수 있다. 남진은 “되돌아보니 가수 활동을 한 지 60년이 됐다”며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다큐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감성으로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있었다”면서 “60년 가수 인생을 산 건 정말 행운이고 축복이다”고 말했다.
남진의 부친은 지역 언론사 대표, 국회의원 등을 지낸 고(故) 김문옥 씨다. 남진은 “난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며 그는 “부유한 집에서 고생 한 번 안 해본 놈이 노래하는 거라 깊은 맛은 없었다”고 자신을 돌아봤다. 그는 “공부하기 싫어서 연극과 음악 두 가지만 팠는데 운이 좋아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이라며 “나는 솔직히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가 가진 재능에 비해 운이 좋았고, 인연 복이 있었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인기에 비해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엔 나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많이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데뷔 때보다 열정이 더 샘솟아요. 가슴으로 감정을 느낀 후에 다시 부르는 30년 전 히트곡은 확실히 깊은 맛이 나더라고요.”
남진이 꼽은 자신의 인생곡은 ‘빈잔’(1982)과 ‘둥지’(2000)다. ‘빈잔’은 홍보 없이 뜬 유일한 히트곡이고, ‘둥지’는 발매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갑자기 만난 행운의 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귀국한 뒤 낸 노래가 ‘빈잔’”이라며 “공백기를 보낸 내 심정과 닮은 노래인데, 그게 히트했으니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 남진은 “‘둥지’는 3년 준비한 노래를 다 미루고 타이틀곡으로 뽑았을 정도로 듣자마자 감이 왔다”며 “이런 좋은 노래를 알아차린 나도 보통 놈이 아니지 않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저는 다양한 장르 노래를 하려고 했어요. ‘님과 함께’는 고고 리듬, ‘마음이 고와야지’는 트위스트, ‘둥지’는 로큰롤인 것처럼요.”
남진은 1970년대 나훈아와 가요계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영호남을 대표하는 두 가수에겐 각종 루머가 따라다녔다. 남진은 나훈아와의 관계에 대해 “라이벌 구도는 당시 연예 업계에서 만든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훈아 씨가 고등학생이던 1968년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처음 봤다”며 “실제로는 내 한참 후배”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런 후배가 은퇴한다고 하니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면서 “노래가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은퇴를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남진은 여전히 좋은 노래를 만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그는 “좋아서 음악을 시작했고 흥이 나서 재밌게 즐겼다”며 “세월이 지나니 음악은 내 삶이 됐고, 나의 전부로 느껴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대한민국 1호 팬클럽이 생겨났던 그 시절 10대 소녀들이 지금은 70대가 됐습니다. 행사에 가서 만나면 친척 같아요. 세월은 흘렀지만, 우리 팬들의 표정은 여전히 소녀 같습니다. 그런 소녀 앞에선 저도 오빠가 되는 거죠.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오를 겁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