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까지 나섰지만 근거는 ‘빈약’…민주 ‘계엄령’ 의혹 역풍 맞나
김민석 “근거 있는 확신” 언급했지만, 박근혜 정부 기무사 문건 제시가 전부
윤 대통령의 ‘충암고 라인’ 등 추정 근거한 의심 외에 구체 증거 제시 못해
친명 정성호 윤 대통령 ‘반국가세력’ 발언 의심 근거로 제시하기도
야권 ‘예방’ 차원 넘어 ‘탄핵 빌드업’ 등 정치 공세라는 의구심 짙어져
이재명 당 대표까지 직접 나선 더불어민주당의 ‘윤석열 정부 계엄령 준비’ 의혹의 실체를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망상”, “괴담”, “궁예 독심술”이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국가 급변사태에 준하는 엄청난 음모를 거대 야당이 직접 제기한 만큼 상당한 근거가 있지 않겠느냐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제보”, “근거 있는 확신”을 언급한 민주당은 3일 현재까지 정황에 근거한 추정 외에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권의 추정대로 ‘탄핵 빌드업’이나 이재명 대표의 1심 판결을 대비해 정치공세라면 상당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에서 계엄 언급이 나온 건 지난달 전당대회 때가 시작이었다. 계엄령이란 전시·사변 등의 국가비상사태 때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치안·사법권을 유지하는 조치를 말한다. 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김병주 의원은 당시 윤 대통령이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을 언급하며 “탄핵과 계엄 대비용”이라고 ‘계엄령 의혹’의 물꼬를 열었고, 김 의원과 같은 국회 국방위 소속인 김민석 최고위원이 뒤이어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김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갑작스럽게 지명하고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이란 발언도 했다”며 “이런 흐름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민주당 인사들은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며 상당한 증거를 확보한 것처럼 언급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제시된 근거는 가정에 기초한 추측성 주장이 대부분이다.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의 충암고 동문이 군사 정보라인을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김 후보자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군 정보기관인 국군방첩사령부(옛 기무사령부) 여인형 사령관, 대북 정보부대 777사령부 박종선 사령관 등이 충암고 출신임을 지목하며 “계엄령 대비를 위한 친정 체제 구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400명 가까운 군 장성 중 이들 4명이 계엄령을 주도할 수 있다는 건 설득력이 극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후보자 역시 “지금 대한민국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을 하겠느냐”고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또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경우 군이 탱크 등을 동원해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등을 진압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경우 의결정족수를 미달시키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는 계획 등이 담겼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 “쿠데타 음모를 획책했다”며 검사 37명을 투입해 200명 넘게 조사했지만 내란 음모는 찾지 못했다. 문건을 작성한 조현전 전 기무사령관의 직권남용 혐의만 기소된 상태다. 문건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가 실제 계엄실행 의지가 있었다고는 보지 않은 것이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 이런 문건을 만든 만큼, 현 정권도 이를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지만, 현재로서는 막연한 추정일 뿐이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근거’ 요구가 거세지자 “0.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친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께서 지난 8.15 경축사 때 반국가 세력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최근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회)상황이다, 이걸 이젠 끝내야 한다(고 했다)”며 “구체적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이런 정도의 얘기를 왜 못하냐”라고 했다.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는 점은 인정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제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국회)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것을 풀어나가야 할지 참모들하고 많이 논의하고 있다”라고 했다. ‘국회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발언은 없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까지만 보면 민주당이 현 정부 공격을 위해 근거가 극히 빈약한 음모론을 제기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가급변사태까지 정쟁화해 국민 불안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세력이라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