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책 읽기는 독서 모임이 끝나야 비로소 완성돼" 강동훈 큐레이션 책방 크레타 대표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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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포공구길에 책방 열어
부산 최대 규모 독서 모임 운영
오래 쌓인 관계들 이곳서 꽃피어
나의 자유에 대해 상상해 보길

크레타 강동훈 대표가 책방 입간판에 '그날의 글귀'를 쓰고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 크레타 강동훈 대표가 책방 입간판에 '그날의 글귀'를 쓰고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

“책을 함께 읽으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길 원해서 나오는 분이 많아요. 반면에 같은 문장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걸 오독이 아니라 해석의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면 책을 읽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책방에 오는 사람들은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이 끝나야 독서가 완성되었다고 말합니다.”

부산 부산진구 전포공구길에서 책방 ‘크레타’를 운영하는 강동훈 대표에게 책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나온 답이었다. 이전까지는 독서는 혼자서 읽는 행위라고만 생각했다. 크레타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큐레이션 책방’이다. 특정 목적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도서를 선별해 판매하는 책방을 의미한다. 흔히 독립서점이라고 부르는, 규모가 작은 서점 중 많은 곳도 큐레이션 책방이다.

강 대표는 “자신(Self), 글쓰기, 로컬 등 섹션별로 책을 큐레이션 해 놓았다. 큐레이션 책방은 저자의 취향이 좀 더 묻어나고, 보다 전문성이 있도록 만들어 보여 준다. 요즘 사람들은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책을 발견하는 것을 재미있어한다”라고 말했다. 그 덕분인지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이지만 크레타는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 문을 열었는데 연말에는 골목 커뮤니티 형성 노력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2023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영하 소설가, 손웅정 감독, 은유 작가 등이 잇따라 다녀가며 ‘부산의 최인아 책방’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한 번 책방이나 해 볼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곧잘 찾아온다고 했다.

강 대표는 “책방을 꿈꾸는 분들이 오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책이 좋아서, 책과 함께하고 싶다는 이유로만 시작하면 100% 망한다. 먹고 살려면 한 달에 1000만 원, 권 수로는 600권을 팔아야 한다. 독립서점하는 분들이 대개 하루에 5권만 팔아도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신생 책방이 불과 1년 4개월 만에 이런 결실을 맺은 비결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는 “부산 최대 규모의 독서 모임으로 성장한 ‘사과’를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분기마다 10여 개 모임이 열리고 크레타를 찾는 모임원은 매월 200명가량이 된다. 독서 모임으로 오랫동안 쌓였던 관계들이 여기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긴 대형서점조차 문을 닫는 시절에 작은 책방이 이유 없이 잘 될 리가 없다.

크레타 하면 매일 바뀌는 입간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을 느낄 때조차 가치 있는 중요한 일에 도전하는 의지를 말한다.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보고 믿는 것을 말하는 힘이다. 용기는 약함의 반대말이다.’ 세스 고딘이 쓴 〈의미의 시대〉에 나오는 글귀가 이날 크레타 입간판에 적혀 있었다.

강 대표는 “출근하면서 매일 문구를 고쳐 쓴다. 독서 모임이나 작가의 북토크가 있는 날은 그 책 속에 있는 문장을 쓴다. 그렇지 않은 날은 읽었던 책들 중에서 밑줄 친 문장을 적는다. 요즘에는 SNS로 어떤 문장을 적어 달라는 요청도 온다”라고 말했다. 영세한 출판사나 무명작가들은 책 마케팅과 홍보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일인 출판사 작가의 책 속에 있는 문장으로만 일주일을 다 채워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입간판을 보고 들어왔다는 고객도 꽤 있는 편이다.

크레타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배경이 되는 곳이다. 크레타의 벽면에는 이 책의 저자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비문이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강 대표는 “조르바는 자유로운 인간의 원형으로 상징되는 인물이다. 이 공간을 찾는 분들이 나의 자유는 무엇일까를 좀 더 상상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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