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돈 없어 가족 볼 면목 없어요" 임금 체불 50% 증가
부울경 2만 2646명, 총 1741억
불경기 탓 건설업서 많이 발생
원청 부도나면 하도급 돈줄 막막
수주액 급감 마땅한 해결책 없어
부산노동청 3주 동안 집중 단속
“돈이 없으니 도무지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합니다.”
부산의 한 굴삭기 업체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로 일하는 김현준(55) 씨는 지난 3월부터 임금을 받지 못했다. 김 씨를 고용하고 임금을 지급해야 할 하도급 건설회사와는 연락도 어렵다. 김 씨처럼 임금을 떼인 직원은 모두 10여 명, 액수는 2억 7000만 원에 이른다. 김 씨는 “4인 가족 생활비와 장비 할부금, 대출 이자, 기름값 등을 포함하면 한 달에 800만 원 정도 지출이 생기는데 수입은 0원”이라며 “카드 대출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가정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고 말했다.
풍성해야 할 한가위가 성큼 다가왔지만, 건설 경기가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임금 체불로 웃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2만 명이 넘는 부울경 노동자가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건설사마저 도산하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3일 부산노동청에 따르면 부울경 지역 임금 체불 액수는 전년 동기보다 1.5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부울경 소재 사업장에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노동자는 모두 2만 2646명이다. 떼인 임금의 액수는 1741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는 상반기 1만 8528명이 1148억 원을 체불 당했다. 피해 노동자 수는 22.2% 증가했으며, 떼인 돈은 51.7%나 증가해 1.5배 이상 많아진 셈이다.
특히 건설업에서 임금 체불이 많이 발생했는데, 최근 부울경 건설경기가 급격히 악화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건설경기 침체로 원청이 부도가 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하도급 업체가 돈을 받을 길이 묘연해진다. 하도급 업체가 원청으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하면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기도 어려워진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수주액마저 급감하고 있어 마땅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부산노동청 관계자는 “부산 중견 건설업체가 올해에만 2~3군데 이상 도산했다”며 “직원들에게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등 나갈 돈은 많은데 여유 자금은 없다 보니 하청 업체와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부산노동청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임금 체불 집중 청산 운영계획’을 마련해 지난달 26일부터 오는 13일까지 3주간 단속에 나섰다. 예년의 신고 사건 처리 위주 관행에서 벗어나 사업장 현장 감독 등 현장 활동 중심의 임금 체불 예방과 청산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도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인한 임금 체불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건설기계 임대료 체납·민원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설기계 체불은 2021년 93억 3000만 원에서 2022년 121억 9000만 원, 2023년 160억 2000만 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부산시청 광장과 전국 지자체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경기가 너무 침체돼 일자리가 부족하다. 그나마 일자리를 찾아도 임금이 체불될 확률이 너무나 높다”며 “마땅한 해결 방법이 없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을 해결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