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체포 대상’ 푸틴, 회원국 몽골서 ‘국빈’ 대우
1박2일 정상회담 소화 후 귀국
몽골 대통령 브릭스 초청하기도
작년 우크라 전쟁 건 영장 발부
체포 권한 없는 ICC 무용론 지적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 대상으로 분류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ICC 회원국인 몽골에서 국빈 대우를 받다 출국했다. 1박 2일 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지난해 3월 체포영장 발부 이후 ICC 회원국을 방문하고도 체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ICC는 권한의 한계를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3일(이하 현지시간)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과 정상회담 등을 소화하고 4일 울란바토르 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ICC 가입 조약인 로마 규정에 서명한 몽골은 ICC가 푸틴 대통령에 대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후렐수흐 대통령은 오히려 레드카펫을 깔아주며 푸틴 대통령을 환대했다.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정치·경제·인도주의 분야 협력에 관한 광범위한 이슈들이 고려됐다”며 “(양국과) 가장 관련성 있는 국제·지역 이슈들에 관해 견해를 공유했고 많은 양자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22∼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리는 중국·러시아 주도의 신흥 경제국 연합체 브릭스 정상회의에 후렐수흐 대통령을 초청하기도 했다.
후렐수흐 대통령 역시 푸틴 대통령의 방문에 감사를 표한 뒤 “우리의 영원한 이웃(러시아)이 전 세계 인류의 평화·안보·지속가능한 발전·복지를 확립하는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앞서 ICC는 작년 3월 푸틴 대통령에 대해 우크라이나 어린이 불법 이주 등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번 방문은 체포영장 발부 이후 첫 ICC 가입국 방문이어서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이론적으로 ICC 회원국인 몽골은 푸틴 대통령이 자국 영토에 발을 들이는 순간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널리 예상된 대로 푸틴 대통령은 체포되기는커녕 극진한 환대 속 ‘보란 듯’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했다.
이는 결정적으로 ICC가 지닌 권한의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ICC는 중대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재판에 회부하기 위한 상설 국제재판소다. 그러나 체포영장 집행 등 독자적으로 범죄자를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나 수단이 없다. ICC 가입조약인 로마 규정에 서명한 당사국들의 자발적 협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몽골은 이웃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관계다. 몽골 석유 수입량 95%가량이 러시아산일 정도로 경제적 의존도가 높다. 현실적으로 영장 집행 협조를 배제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가 사전에 몽골 측으로부터 ‘불체포 확약’을 받았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이번 해프닝으로 ICC가 몽골을 차후 체포영장 집행 협조 의무 위반 혐의로 기소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정작 사법처리 수순을 밟더라도 회원국에 대한 제재 등 심각한 처벌 수단이 없어 사실상 ‘규탄’ 메시지를 내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ICC 회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이 2015년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그를 체포하지 않았으나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넘어간 전례도 있다. ICC 회원국이 124개국에 달하지만 정작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 중국, 인도 등 핵심 국가들이 당사국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ICC는 지난 5월 가자 전쟁과 관련해 하마스 최고지도부 3인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지만 여전히 발부 여부가 결정 나지 않았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