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사랑한 죄, 그를 미워할 순 없었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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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도둑 / 마이클 핀클

실존한 괴도 이야기 담은 논픽션
300점 이상의 예술 작품 훔쳐
탐미·소유욕에 대한 보편적 공감

<예술도둑> 표지. <예술도둑> 표지.

실제로 절대 해선 안 될 것이 도둑질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도둑 이야기가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프랑스 국가대표 괴도 아르센 뤼팽이다. ‘오션스’ 시리즈와 같은 도둑 영화들도 넘쳐난다. ‘하이스트 무비’ 혹은 ‘케이퍼 무비’라 불리는 하위 장르도 생겨날 정도다. 물론 모두 허공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실제로도 존재한다. 최근 실존하는 매력만점의 도둑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예술도둑>은 역사상 가장 많은 예술 작품을 훔친 희대의 도둑, 스테판 브라이트비저(Stephane Breitwieser)의 실화를 다룬 논픽션이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200여 회에 걸쳐 300점 이상 훔쳤고, 금전적 가치는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핀클은 수많은 이들과 주고받은 인터뷰, 광범위한 연구와 치밀한 취재 등을 토대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도둑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쳐보인다.

브라이트비저는 왜 훔치는가. 한마디로 아름다움을 너무나 사랑해서이다. 남들처럼 박물관에서 미(美)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탐미(耽美)욕을 채울 수가 없었다. 아니 박물관에서 감상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박물관은 감옥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고, 여러 규칙들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진득이 한 자리에서 작품을 감상할라치면 등 뒤를 셀카봉이 쿡쿡 눌러 방해받는다. 그는 “아무리 강렬히 마음을 울리는 작품 앞에 서 있어도 박물관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대신 제안하는 방식은 이렇다. “소파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댈 수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술도 한 모금 마셔도 좋다. 간식도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나 손을 뻗으면 작품에 닿을 수 있고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된다.”(36쪽) 그런 그에게 ‘아름다움을 취하는 행위’는 결코 도둑질이 아니었다. 당연히 스스로를 도둑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미술품 수집가라 불리길 원했다. 어떤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할 뿐이지, 그 작품을 어떤 경위로 손에 넣었는지 따위는 사소한 일이다.

스테판 브라이트비저가 독일 바덴바덴 슈투트가르트 신궁전에서 훔친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 ‘클레브의 시빌’. 출판사 제공 스테판 브라이트비저가 독일 바덴바덴 슈투트가르트 신궁전에서 훔친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 ‘클레브의 시빌’. 출판사 제공

도둑질의 이유만큼이나 그 방법도 궁금하다. 실제로 도둑을 소재로 한 여러 작품에서도 동기보다 방법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의외로 ‘미션 임파서블’에서 등장할 법한 놀랍고 기발한 방법 따위는 없었다. 변장하지 않았고, 몰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대낮에 당당하게 입장했다. 도구는 단 하나, 스위스 아미 나이프. 태연하게 진열장의 나사를 푼다. “나사 하나가 빠지거나 튀어나온 정도의 작은 변화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경비원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사람이지 나사가 아니다.”(25쪽)

양심의 가책이 없었기에,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물건을 훔칠 수 있었다. 초반에는 그런 대담한 방식이 통했지만, 그것이 계속 통할 거라 기대해선 안 될 일이었다. 경찰에 체포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러나 형기(고작 4년 형을 선고받았다)를 마치고 나온 그의 인생은 생각처럼 나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책을 쓰고픈 이들로부터 인터뷰 대가로 거액을 챙겼고, 예술품 보안 컨설턴트(이야말로 진정한 ‘덕업일치’다)로의 새로운 미래도 예정돼 있었다. 문제는 그의 도벽을 멈출 수 없었다는 점이다. 나중엔 예술품만이 아니라 옷가지 등 여러가지를 훔쳤다. 그가 가게에 들어가면 불과 2초 만에 보안상 취약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결국 감옥 생활을 되풀이했다. 때로는 너무 잘 알아도 탈이다.

도둑질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나도 그렇고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나 탐미와 소유욕 등 인간의 가장 솔직한 욕망과 집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그의 감정에 나도 모르게 공감해버리고 만다. 나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어판은 이제 출판되지만, 원서는 지난해 아마존과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뉴요커 올해의 책 등 여러 타이틀을 이미 획득한 바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만큼 공감하기 힘든 격언도 없다. 말도 안되는 소리. 죄 지은 사람이 미운 거다. 그런데 정말 단 하나의 예외로, 브라이트비저의 죄는 미워도 도저히 그를 미워할 수는 없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마이클 핀클 지음/염지선 옮김/생각의힘/304쪽/1만 78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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