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어류, 멍게 이어 굴마저 …역대급 고수온에 ‘종자·채묘’ 비상
일부 해역 ‘빈산소수괴’ 폐사 확인
내달 출하 성체 고수온 피해 적어
반면 단련 중이던 ‘어린 굴’ 초토화
어민들 “농사 지을 씨 없다” 토로
“올해는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지금 상태라면 내년엔 수확할 물량이 없어 일손을 놓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올여름 남해안을 덮친 역대급 고수온에 어류, 멍게 양식장이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굴 양식장도 비상이다. 당장 내달 출하를 앞둔 성체는 그나마 괜찮은데, 가뜩이나 종자가 부족해 발을 구르는 와중에 겨우 확보한 채묘까지 떼죽음해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최근 수온이 진정되자 한숨 돌렸던 어민들은 다음 농사 걱정에 다시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10일 경남 통영에 본소를 둔 굴수하식수협에 따르면 최근 진동만과 자란만 일부 해역 양식장에서 ‘산소부족물덩어리(빈산소수괴)’ 피해로 추정되는 양식 굴 폐사가 확인됐다. 빈산소수괴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산소 농도가 L당 3㎎ 이하인 현상이다. 한여름 남해안에서 종종 발생해 양식생물 폐사를 유발한다. 최근까지 접수된 양식 굴 피해는 14개 어가, 피해액은 1억 9700만 원 정도다.
수협 관계자는 “아직은 평소보단 심한 정도다. 굴은 주변 환경에 문제가 생기면 껍데기를 닫아 버리는 데다, 일일이 꺼내 확인할 수도 없어 아직 정확한 집계는 못 한 상태”라며 “보통 9월 물이 바뀔 때 폐사가 많이 발생한다. (추가 폐사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고 했다.
다행히 고수온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딱딱한 껍데기가 알맹이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달 시작될 출하 작업에는 큰 지장이 없을 전망이지만, 문제는 내년이다. 갈수록 종자 난이 심해지는 와중에 올해 고수온에 채묘까지 망쳤다.
남해안 굴 양식업계가 필요로 하는 종자는 한 해 1000만 연 정도다.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종자는 제한적이라, 절반 정도는 육상 시설에서 인공 배양한 종자로 충당해 왔다. 그런데 최근 3년 사이 인공종자 생산량이 급감했다. 매년 전년 대비 20% 이상 줄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어민이 종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온이) 저점에서 고점에 닿는 시간은 짧아졌고, 고점이 유지되는 기간은 너무 길어졌다. 이 과정에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증식됐을 공산이 크다”며 “여기에 강수량 감소로 바닷물 염도가 높아져 굴 생장에 지장을 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국립수산과학원도 원인 규명에 나섰지만 아직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해황 발생 등으로 굴의 생리적인 변화와 산란에 참여하는 어미 굴의 부족 등 굴 산란량 감소를 일으키는 복합적인 원인’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여름 자연종자 최대 생산지인 가덕도 인근이 고수온에 초토화됐다. 겨우 확보한 채묘 역시 마찬가지. 채묘는 굴 종자를 가리비나 굴 껍데기에 부착시키는 작업이다. 농사로 치면 밭에 씨를 뿌리는 과정이다. 업계에선 6~8월 사이 채묘한 어린 굴로 이듬해 수확할 물량을 확보한다.
그런데 지난달 중순 이후 30도에 육박하는 이상 고온 현상이 한 달 가량 이어지면서 본 어장 입식에 앞서 거제 앞바다에서 단련 중이던 채묘가 궤멸 상태다. 게다가 종자나 채묘는 정부 지원 대상이 아닌 탓에 이상해황 등 자연재해로 집단 폐사가 발생해도 최소한의 복구비조차 못 받는다. 또 양식수산물재해보험 가입도 안 돼 이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어민이 떠안아야 한다.
굴수협 지홍태 조합장은 “남은 채묘는 예년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이마저도 얼마나 살아남을지 미지수”라며 “이대로는 씨앗이 없어 농사를 못 짓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육종 연구를 통해 기후 변화를 극복할 우량종자와 그에 맞는 먹이생물을 개발, 보급할 전담 기관 신설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