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군사 요충지까지’ 기장 역사 한눈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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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박물관 개관 10년 전시
‘이제 우리의 일기를 쓰겠소’
신도시 개발 과정 아카이브

방곡리 유적에서 나온 조선 시대 백자 합과 무덤에 넣은 작은 그릇들. 정관박물관 제공 방곡리 유적에서 나온 조선 시대 백자 합과 무덤에 넣은 작은 그릇들. 정관박물관 제공

부산 기장은 언제부터 기장이라고 불렸을까.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을 한자로 개명하는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기장현(機張縣)으로 불리게 된다. 그 이전에는 갑화양곡현이라고 불렸다. 고려 시대까지 기장은 향, 소, 부곡이 존재하는 그야말로 변방이었다. 조선 시대 기장이 오랜 시간 왜구의 피해에 시달리자 비로소 기장을 국토방위체계의 중요한 고을로 인식하게 된다. 흥선대원군이 기장 대변리에 척화비를 세운 것도 그 일환으로 해석된다. 1919년 4월 5일 기장 장터에서 시작된 만세 바람은 장안 좌천, 일광, 철마 등 기장 전체에 퍼졌다. 3월 1일에 시작된 만세운동이 기장까지 빠르게 전파된 것이다.

부산 정관박물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고 있는 특별기획전 ‘10년의 기록-이제 우리의 일기를 쓰겠소’ 중 1장 ‘고요한 땅, 그 이면의 시간’에 소개된 주요 내용이다. 기장에서는 고려 시대인 10~12세기부터 청자가 생산됐다. 기장 청자는 단순한 기교를 통해 단아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고려청자 제작 기술은 조선의 개국과 함께 독창적인 분청사기로 변화한다. 파도 무늬를 빽빽하게 넣고 그 위를 무심한 듯 지나가는 솔질로 마무리한 기장 분청사기와 백자는 한양의 궁궐과 중앙관청에 납품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관 신도시 개발로 방곡리와 가동 유적에서 나온 청자 대접, 명문이 새겨진 분청사기 접시, 백자 합과 명기(明器), 모란·사자무늬 청동 손잡이 거울 등을 통해 고려와 조선 시대 생활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정관 신도시 개발 당시 발굴 현장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정관 신도시 개발 당시 발굴 현장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2장 ‘공들여 지켜온 것들’에서는 은진 송씨(恩津 宋氏) 가문 등에서 기증한 기장의 덕과 기품을 느낄 수 있는 고서와 고문서를 만날 수 있다. 3장 ‘과거의 시간 위로 내일을 그리는 사람들’에서는 기장과 정관 지역 매장문화재 발굴로 전국 최초의 삼국 시대 생활사 박물관을 만드는 과정을 만난다. 정관신도시 개발로 사라진 삶의 터전을 기억하고, 새로 유입될 주민들과 융합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기록한 사진, 영상 등 구비 자료와 민속 자료를 모두 선보인다. 정관박물관은 정관 신도시 개발 사업 과정에서 발굴된 가동 유적과 방곡리 유적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2015년 1월 26일 개관했다.

정관박물관 박미욱 관장은 “이번 전시는 정관박물관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출사표다. 박물관 보관 자료(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가까이서 보고 만질 수 있게 전시를 기획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열린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정관박물관 특별기획전 ‘10년의 기록-이제 우리의 일기를 쓰겠소’ 포스터. 정관박물관 제공 정관박물관 특별기획전 ‘10년의 기록-이제 우리의 일기를 쓰겠소’ 포스터. 정관박물관 제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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