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자 김대우 씨, 후두암 투병 중 영면
형제복지원 3번 끌려간 인물
올해 2월 국가 상대 재판 승소
국가 항소로 2심 진행 중 사망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김대우 씨가 8일 오전 부산 자택에서 영면했다. 향년 53세.
8일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에 따르면 김 씨는 후두암으로 부산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집에서 요양하던 중 숨을 거뒀다.
1971년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에서 태어난 김 씨는 2020년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1981년 여름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고 진술했다. 그는 “어느 날 저녁 부전역 앞에서 놀고 있는데 ‘따라오라’는 경찰 한마디에 형과 역전 파출소로 끌려간 뒤 형제복지원으로 향했다”며 “퇴소와 입소를 반복하며 81년, 82년, 83년 세 차례나 잡혀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형제복지원에서 김 씨는 고춧가루 고문과 ‘원산폭격’ 자세를 견뎌야 했다. 구타가 일상인 소대 생활을 하다 1985년 서울 소년의집으로 전원됐고, 형과 부산에 돌아와 부전역 근처에서 여인숙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3월 경찰이 서면파 부두목 ‘까마귀’라 지칭하며 자신을 잡아가 이유 없이 전과자가 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올해 2월 부산지법은 형제복지원 인권 침해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김 씨를 포함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70명이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7건을 제기했고, 합계 청구액 58%가 인정됐다. 반인권적 가혹 행위와 노동력 착취가 반복된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부산에서 최소 657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1심 판결에 국가가 항소하면서 재판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김 씨는 국가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두게 됐다.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는 “대우 형이 몇 달 전부터 밥도 잘 못 먹고 살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며 “후두암 진단을 받았는데 결국 손쓸 방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항소를 하든 안 하든 국가가 사과를 먼저 해야 맞는 것”이라며 “대우 형을 며칠 전 만났을 때 사과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 손으로 ‘X’ 자를 그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 씨 장례는 가족과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이 단체장으로 치른다. 생존자모임 측은 “김대우 님은 누구보다 국가를 상대로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을 요구한 피해 생존자였다”며 “가족이 단체장을 원하셨고, 외롭게 떠나보내선 안 된다는 단체 뜻도 있어 함께 장례를 치르게 됐다”고 밝혔다. 빈소는 부산 동래구 낙민동 착한전문장례식장 203, 발인은 10일 오전 6시, 장지는 부산영락공원. 051-987-1024.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