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부야! ‘부산포’는 미술인들이 지켜줄께!
부산 미술인들 사랑방 역할
부산포 돕기 위해 그림 기부
부산 대표 작가 대거 참여
13일까지 갤러리 공감 전시
부산 중구 중앙동 백산기념관 뒤쪽에 있는 ‘부산포(釜山浦)’. 부산 예술인들 특히 50대 이상의 부산 미술인들에게 이곳은 특별한 장소이다. 지금은 작고한 김종식, 오영재, 천재동 같은 이가 참새 방앗간처럼 부산포에 출입했고 후배 작가들도 자연스럽게 부산포에 모이게 됐다. 부산포 주모는 끝도 없이 술을 마시는 바람에 다른 곳에선 타박 맞기 일쑤였던 원로 화가들에게 거의 공짜로 술대접했고, 형편이 괜찮으면 개인전을 여는 젊은 작가들에게 봉투를 내밀거나 작품을 사주기도 했다.
서른 초반이던 1970년대 말 가게를 시작해 ‘주모’로, 혹은 ‘누부야’로 통했던 주인장 이행자 씨는 그렇게 부산의 예술인들과 부대끼며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한 달도 안 돼 치아가 빠지기 시작했다. 위암 초기였다.
부산포 누부야가 쓰러졌다는 소문이 퍼지며 부산 미술인들이 누부야를 돕기 위해 나섰다. 2009년 판화가 주정이가 주축이 돼 주모 이행자 씨를 돕는 특별전 ‘누부야 누부야 그냥 갈 수 없잖아’전을 열었다. 주정이, 김응기, 이상식 직가가 앞장서 전화를 돌렸고 백성도, 한성희, 서상환, 권달술, 이민한, 김성연 등 조금이라도 부산포와 인연이 있는 미술인들이 앞다퉈 작품을 내놨다. 연을 맺지 않았어도 좋은 취지에 동참하겠다는 작가의 참여가 이어졌고 부산을 떠나 경기도 양평에서 작업하고 있는 안창홍, 최석운도 흔쾌히 작품을 기증했다. 그렇게 아무런 조건 없이 미술인 43명의 작품이 모였고 작품을 팔아 당시 3000만 원이 넘는 거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미술인들의 도움을 받아 부산포는 현재 위치로 이사했고 주모의 건강도 회복할 수 있었다.
15년이 지난 2024년 부산 미술인들이 다시 부산포와 누부야 이행자 씨를 돕기 위해 나섰다. 코로나로부터 시작된 어려움이 누적되고 낡은 가게에 일반 손님들까지 끊어지며 월세조차 감당하지 못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이홍선 작가가 우선 가게 창고에 쌓인 그림들을 정리하며 팔 수 있는 건 팔아 밀린 월세부터 정리했다. 낡은 가게를 수리하기에는 문제가 많아 결국 새로운 장소로 부산포를 이사하기로 했다. 이사비와 시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상식 작가가 또 나섰다. 부산포와 인연이 있는 부산 작가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그림을 부탁했다.
이 작가는 “전화를 받은 작가 중 단 1명도 거절하지 않고 대표 작품을 내놓았다. 참여 작가 중 반이 부산 최고의 미술상인 송혜수 작가상을 받았고, 대학교수로 퇴직하는 등 화단에서 이름이 난 이들이었지만 그 어떤 조건도 달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그렇게 김충진 차경복 주정이 김영주 박윤성 한성희 한장원 이상식 예유근 이영 구명본 이민한 신홍직 김남진 이홍선 신성호 성현섭 허필석 작가까지 18명이 모였다. 급하게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에는 18점의 작품을 모두 구입해 줄 컬렉터를 찾았고 다행히 갤러리 공감에서 전시와 작품 구입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9일 부산시 동래구 갤러리 공감에서 개막한 ‘화주(畵酒)들의 모닥불’ 전시가 바로 그 현장이다. 전시는 13일까지 열린다. 좋은 마음이 더해진 이유인지 전시에서 만나는 작품은 모두 애틋하고 울림을 담고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