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추석 영화… 올해는 ‘베테랑2’ 나홀로 출격
닷새간 추석 연휴에 한 편 개봉
‘대형 영화’ 경쟁한 예전과 달라
관람 형태 변화·출혈 경쟁 피해
극장영화 빈자리, OTT가 채워
‘1편’. 올 추석 연휴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지는 한국 영화 숫자다. 극장가 성수기로 꼽히던 명절 연휴에 대형 기대작 여러 편이 출격해 경쟁하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대형 상업영화뿐 아니라 중·저예산 영화도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연휴 극장가 풍경에 영화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는 추석 연휴 직전인 오는 13일 스크린에 걸린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천만 영화 ‘베테랑’(2015년)의 속편이다.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 서도철 형사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박선우 형사가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 ‘밀수’에 이어 다시 한번 팬데믹 이후 영화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
눈에 띄는 건 이 영화가 영화계 관행처럼 굳어진 수요일 개봉 공식 대신 금요일 개봉을 택한 점이다. 개봉 초기 흥행 흐름을 끊지 않고 14일부터 닷새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 기간 관객몰이를 이어 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배우 황정민, 정해인이 의기투합한 작품이고 인기 영화 속편이라 관객의 기대가 높다. 올해 한국 영화 라인업에서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5월에는 제77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돼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 작품을 제외하면 추석 연휴 직전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전무하다. 연휴 시작 한 주 전인 7일부터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까지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베테랑2’ 한 편이다. 추석 연휴에 이른바 ‘텐트폴’로 분류된 대형 상업 영화들이 연휴를 사나흘 앞두고 잇따라 개봉한 예년 극장가 풍경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추석만 하더라도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 하정우 주연의 ‘1947 보스톤’,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등 3편이 추석 연휴에 나란히 극장에 걸려 맞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는 지난주 개봉한 판다 푸바오와 에버랜드 사육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안녕, 할부지’, 공연 실황 영화인 ‘오빠, 남진’, 독립예술영화 ‘딸에 대하여’ 등이 있지만, 이들 모두 특정 마니아층을 겨냥한 작품이라 추석 연휴까지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에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계속되는 영화 시장의 침체와 달라진 콘텐츠 소비 흐름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고 있다. 팬데믹 이후 명절 연휴에 개봉한 작품들 대다수가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하는 등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명절 연휴 극장을 찾는 관객 숫자 역시 팬데믹 이전보다 급감해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화계에선 명절 연휴를 더 이상 ‘극장 성수기’로 보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올해 설 연휴뿐 아니라 팬데믹 이후 명절 연휴에 개봉한 작품 중 흥행에 성공한 숫자가 거의 없다”며 “오히려 성수기로 꼽히지 않았던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흥행하는 등 기존의 흥행 공식이 변하고 있다”고 봤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제작 편수가 급감해 극장에 틀 만한 대형 영화 숫자 자체가 적어졌다”며 “남은 기대작들은 여행을 많이 떠나는 명절 연휴보다 극장을 많이 찾는 시기를 고려해 개봉 시기를 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 간 ‘출혈 경쟁’을 피하기 위한 배급사들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베테랑2’가 칸영화제에 갔을 때부터 추석에 개봉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개봉 3개월 전인 6월에 개봉일을 발표하는 등 일찌감치 시장을 선점하고 홍보에 나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굳이 신작을 꺼내서 출혈 경쟁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서 “시장이 안 좋은데 흥행이 거의 확실한 큰 영화와 경쟁하는 건 위험이 큰 모험”이라고 했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올해 여름 개봉작도 그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다”며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마케팅적으로 성수기와 비성수기의 구분이 무너졌고, 영화 배급사 입장에선 더 이상 그 시기에 개봉하는 게 무의미해졌을 것”이라고 봤다. 정 평론가는 “팬데믹 이전 지난 20년 동안 구축된 한국영화 흥행 공식이 몇 년 사이에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면서 “추석에는 보통 사극이나 가족 영화를 내놓곤 했는데, 오랫동안 제작에 못 들어간 탓에 개봉할 영화가 없는 점도 이런 결과에 한몫할 것”이라고 했다.
극장 개봉작의 빈자리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공개작이 대신 채운다. 김동욱 주연의 ‘강매강’과 김우빈이 나선 ‘무도실무관’, 전종서·지창욱 주연의 ‘우씨황후’ 등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오는 11일 공개하는 ‘강매강’은 코믹 수사극이다. 코미디 장르가 팬데믹 이후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데다, 김동욱·박지환·서현우·박세완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의기투합해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오는 13일 공개되는 ‘무도실무관’도 소재의 참신함과 김우빈표 액션을 볼 수 있어 기대를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파트1 1~4부를 공개한 ‘우씨황후’도 12일 파트2 5~8부를 공개하며 시청자를 끌어들일 예정이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