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거친 세상 속 우리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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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형제 '풍경(風經)'

무진형제 '풍경'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무진형제 '풍경'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무진형제 '풍경'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무진형제 '풍경'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무진형제는 견고하고 조화롭게 돌아가듯 비춰지는 동시대 사회 시스템의 생존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특유의 서정성과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관람자들을 예기치 못한 사고의 영역으로 이끄는 작업을 해왔다. 일전에 소개한 바 있는 ‘궤적(櫃迹) - 목하, 세계진문(目下, 世界珍門)’에서 현재의 시공간과 고전문학의 구성요소를 연결짓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였다면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에서는 분절적이고 모호한 구성과 신화적 상상력을 담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을 선보인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정지되어 있는 물체를 한 프레임씩 변화를 주면서 촬영한 후 이 이미지들을 연속적으로 엮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기법으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이 작품은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두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밀폐된 공간 안에서 아버지가 남기고 간 정체 모를 검은 알들을 소중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때때로 끊임없이 몰아치는 바람과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마주하게 되지만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기계적인 움직임을 반복한다. 그들은 이러한 뜻밖의 상황이 낯설고 두렵기에 거센 바람 앞에서 숨을 멈추고 피하는 것 외에 달리 또 무엇을 할 수 없다. 형제의 공간을 잠식한 괴물들이 절정에 치닫는 몸짓을 행하자 영상의 말미에 상상 속 동물인 ‘미르메콜레온’이 등장한다. 미르메콜레온은 사자의 머리와 개미의 몸뚱아리를 가진 동물이다. 육식도 초식도 하지 못한 채 배고픔으로 죽어버리는 존재이기에 끝내 산산이 부서져 없어져 버리고 만다.

작품의 제목인 ‘풍경(風經)’은 바람의 경전, 즉 바람이 전하는 소리다. 그것은 바로 주(主)에서 벗어난 곁가지들, 예컨대 반체제, 비과학, 비상식, 비역사 등의 영역으로 혼란과 미지의 바람이다. 형제들을 가두고 있는 일방향의, 그리고 효율적인 시스템 속 세계를 끊임없이 흔들고 균열시킨다.

두 형제의 삶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또한 아버지가 남기고 간 검은 알은 그들의 세대로부터 진리로 여겨져 계승되고 있는 어떠한 것들이다. 영상 속 인물들은 결국 ‘바람이 전하는 소리’를 끝내 체화하지 못하고 끝없이 침잠하는 결말을 맞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분열되고 깨져야 한다. 불어닥치는 바람을 용감하게 마주하고, 검은 알들을 부수고 나와 초월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해리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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