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반려동물 장례 부조
결혼은 했으나 자녀 없이 중년에 이른 여성 지인은 늘 개와 고양이 예닐곱 마리를 양육했다.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울면서 전화가 왔다. 반려견이 죽어 화장장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주저 없이 조의금을 보냈다. 반려동물을 잃은 뒤의 상실감, 이른바 ‘펫 로스’가 오죽할까 싶어서였다. 물론 이런 변화상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일본 아이펫손해보험㈜의 2023년 설문 조사 결과가 비근한 사례다.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휴가를 냈다’는 응답자 중 50.9%는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알리지 않은 이유는 ‘공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50.8%)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 회사는 여기에 착안해 반려견, 반려묘가 사망하면 직원에 사흘 유급 휴가를 제공하기로 했다. 부모 형제 상과 동일한 일수다. 이와는 별도로 반려동물과 함께 쉬라고 연간 이틀의 ‘펫 휴가’도 준다. 일종의 가족 돌봄 휴가다. 물론 이 회사 수준의 복지가 일본에서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자가 1500만 명을 넘고 있다. 많은 가정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걸 반영해 사회 제도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달 인터넷 언론사 오마이뉴스 노사는 반려동물 장례 때 하루 유급 휴가를 부여하기로 단체협약을 갱신했다. 반려동물 장례 휴가는 언론계에서는 처음이지만 러쉬코리아, 롯데백화점 등 타 업계에서 최근 도입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 계층의 반려견 장례를 지원한다. 5만 원을 자부담하면 나머지 비용을 시와 업체가 분담하는 방식이다. 또 저소득층이 사정상 장기 외출을 하게 되면 최장 10일간 반려동물을 맡아주는 ‘우리동네 펫위탁소’ 18곳을 운영 중인데, 최근 지원 대상을 1인 가구까지로 확대했다.
부산 수영구가 최근 ‘사회적 약자 반려동물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중증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게 반려동물 진료비와 장례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반려동물은 홀로 사는 취약 계층의 외로움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을 돕는 효과가 있다. 장례 부조가 취약 계층의 경제적·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고 사회와의 연결점이 돼야 취지가 산다. 연간 200만~300만 원의 소규모 예산 사업이긴 하나 지자체의 반려동물 장례 부조를 낯설게 여기는 시선도 있다. 지자체의 지원이 효과적으로 시행돼 복지 그물망 강화에도 기여하는 방향으로 정착해야 하는 이유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