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보이지 않는 힘의 불균형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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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 나비 '땅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

히라 나비 '땅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 영상 작품 중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히라 나비 '땅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 영상 작품 중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이 영상 작품은 1995년 경남 진해의 STX에서 건조되어 2018년 파키스탄 가다니(Gadani)에서 해체된 컨테이너 선 ‘오션 마스터’와 작업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대화로 진행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파키스탄은 90년대부터 전 세계로부터 폐기되어 들어온 대형선박을 해체하는 선박해체업을 바탕으로 제조업 발전을 하는 나라이며 작가의 고향이기도하다. 선박해체업이란, 폐선박을 인수 후 분해해 고철 등의 광물을 채집하는 산업을 말한다. 배의 무덤이라 불리는 가다니에는 수십 개의 선박해체소와 수백 명의 해체공들이 있다. 배를 분해하는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주어지지 않는다. 폐선 해체는 노동자들의 맨 손으로 이뤄진다. 1톤이 넘는 철판에 깔리거나, 강제 절단 과정에서 폭발 사고 등 작업장은 위험하고 열악하다. 산소 용접기에 시력을 잃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고를 당하는 것도 신의 뜻이며,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혹한 현장은 가족을 먹여살릴 신의 선물이라고 여긴다.

1980년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박해체업은 사양산업이었다. 폐선들은 저임금과 느슨한 환경규제를 찾아서 파키스탄 및 방글라데시, 인도에 둥지를 틀었고 작품은 이 산업의 해양 생태 파괴, 이주 노동력에 영향을 미치는 착취적인 노동 관행, 부의 통합으로 연결된 산업 네트워크와 보이지 않는 힘이 불균형을 이루는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히라 나비는 우르두어 작가이자 시인인 쿠라툴레인 하이더의 1959년 저서 〈아그 카 다리야(Aag ka Darya, 불의 강)〉에서 받은 영감과 어머니와의 토론에서 얻은 인사이트, 롭 닉슨의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2011)〉의 아이디어, 파키스탄 좌파 작가 파이즈 아메드 파이즈의 시를 결합하여 이 참혹한 상황을 서정적 이미지와 시적이고 사색적인 텍스트를 병치시켜 탐구한다. 우리는 대형선박이 임무를 완수하고 죽음을 맞는 곳이 어딘지, 그곳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과 환경을 담보로 하는 선박해체업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해운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출생한 히라 나비는 본인의 출신지에 기반하여,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에 고착화 되어버린 착취와 침략의 형태에 대해 탐구하거나 식민지가 근대성을 향해 걸어온 길에 대해 고찰하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한다. 특히 ‘땅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은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수 십 차례의 전시와 스크리닝에 참여한 작가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환경과 생태, 세계화, 식민주의, 꿈과 현실과 같은 동시대적 현상을 고찰하고 냉혹한 현실과 대조되는 서정적인 이미지와 시적인 텍스트, 기억과 향수, 일상의 의식을 통해 다큐멘터리와 내러티브의 경계에 머무는 다층적인 결과물을 보여준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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