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모국을 떠나는 일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답답한 국내 현실에 실망해
낯선 외국행 택하는 청년들
기존 가치관 버리지 못하면
일상의 불만 사라지지 않아
먼저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행복 향한 주체적 용기 생겨
〈한국이 싫어서〉라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상영 중이다. 직관적인 제목 덕분일까, 한국에서의 삶이 고단한 청년들의 주목을 끌었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동명 소설 속 줄거리에서 주인공 계나는 한국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삶을 찾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호주의 삶은 한국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우나 외국인으로서 신분장벽을 느끼기도 한다. 소설은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주체적인 용기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한국이 싫어서 떠났다면 여태껏 지녀왔던 가치관도 함께 떠나보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예컨대 계나가 보여주는 물질적인 욕구나 남과 비교하는 습관, 효율성만을 판단기준으로 삼는 가치관 등을 버리지 못하면 어디에서 살든 한국에서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워킹홀리데이는 협정을 맺은 국가의 청년들에게 자국에서 1년간 일할 수 있는 워킹비자를 발급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일종의 관광취업 제도다.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제도의 이름처럼 일하며 돈도 벌고, 휴식과 여행도 즐기며 외국에서 장기로 살아보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가서 워킹홀리데이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떠나보고 싶다. 언제 여기서 살아보겠나 싶은 국가를 가보는 것도 워킹홀리데이의 묘미가 아닌가. 그곳의 말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올리브 농장이나 포도밭에서 언어 대신 몸을 사용하며 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두 국가 모두 구경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 홀리데이는 어느 곳보다 보장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계나의 고민과는 결이 다르다. 앞선 것들은 비자가 보장하는 최대 1년 동안만 살아볼 곳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나는 한국을 아예 떠나 이민을 가고자 했다.
대개 사람들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주요한 관계들을 맺어 나가며 모국이라는 감각을 얻는다. 이와 결별하여 계나처럼 혈혈단신으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으로 떠나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고 적응하는 일은 분명 낯설고 때론 외롭다. 이런 두려움과 불편함을 무릅쓰는 용기에는 각자의 내적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라면 한국사회에 대한 실로 큰 실망과 분노가 필요하다. 소설이 출간된 2015년은 한국사회에 ‘헬조선’ ‘이생망’과 같은 단어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한편 지금은 ‘오히려 좋아’나 ‘가보자고’ ‘원영적 사고’와 같은 긍정적인 유행어들도 돋보인다. 그동안 한국의 위상 역시 꾸준히 높아져 이제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살아보고 싶고 일하려고 찾아오는 국가가 되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걸 깨닫는 경우도 많다. 외국 생활은 여행객으로 잠시 머물 때까지만 환상적일 뿐 정주한다는 건 종국엔 일상의 반복과 권태와 불만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터전의 변화는 삶을 정말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지역의 기후와 지형 조건, 자원, 영토 크기, 인구밀도, 인구 구성 등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성격, 행동 패턴, 문화, 규범, 국가의 산업구조까지 모두 달라지곤 한다. 인간을 포도에 비유하는 것은 과할 수 있지만 와인을 생산할 때 포도가 보여주는 ‘떼루아’의 중요성을 떠올리면 지리적 공간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더욱 와닿는다. 하지만 동시에 포도나무가 메마르는 조건은 어디서든 비슷하다. 직사광선을 너무 강하게 쬐거나 비바람이 너무 자주 내리치는 가혹한 환경은 작가가 앞서 지적한 어디서든 삶을 황폐화시키는 사고방식과 태도들이다.
한국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면, 혹은 불만스럽더라도 모국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면 굳이 계나와 같은 선택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속한 사회와 내가 근본적으로 괴리된다고 느껴진다면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켜 보는 건 괜찮은 대안이 될 것 같고 워킹홀리데이는 그런 면에서 청년만이 누릴 수 있는 저비용·저위험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물고기에 비유하는 건 포도보단 덜 과할 것이다. 물고기를 보면 냇가에, 호수에, 어항에, 얕은 물에, 심해에, 난류에, 한류에, 떼로, 홀로, 저마다의 특성대로 사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우리는 종종 막막함과 걱정으로 주변에 열심히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예컨대,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에 “거기 너무 소금물이라서 나는 못살겠더라”고 민물고기가 답해줬는데 정작 본인은 바닷물고기 타입이었다면 어떤가. 내가 어떤 물고기인지는 나 자신이 가장 정확히 알아야 한다. 또 일단 부딪혀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대체로 일반적인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일반이 전체는 아니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